‘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자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가 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엔트로피’입니다. 세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로 나아갑니다. 예를 들면, 잉크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리면 점점 퍼지며 흐려집니다. 우리 몸이 나이가 들수록 노화되고, 정보가 소멸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반자연적”이라고 말하며 ‘반엔트로피’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엔트로피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향하지만,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에 맞선다는 것입니다. 가령 책상을 정리하는 것 또한 하나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요?
우리는 매일 잊히거나 지워질 정보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발전시키려 합니다. 일기를 쓰고, 가족과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며,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이러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루서는 이를 “죽음의 판결을 받은 인간의 반자연적 의도”라고 진단했습니다. 여기서 ‘죽음의 판결’은 결국 무(無)로 돌아가는 엔트로피 과정이고, ‘반자연적 의도’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죽음에 저항하는 ‘반엔트로피’를 의미합니다.
또한 플루서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본능적 행위가 아닌 “인위적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본능적으로 동물들이 신호를 주고받는 방법과 달리, 인간은 창의적이고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그림, 문자, 이미지 등 의사소통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며 발전시킵니다. 즉 플루서의 말처럼, “죽음이라는 고독에 대항하기 위한 기교”를 부립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운명에 저항하며 새로운 방법을 끊임없이 창조합니다.
결국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정보를 보존하고, 공유하며,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AI로 이미지를 만들며, 클라우드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모든 행위는 나의 흔적을 남기고 함께 나누려는,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플루서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담론과 대화’로 보고 ‘정보의 보존, 분배, 새로운 정보로 합성’을 설명했습니다.)
강연 중인 플루서의 모습. 출처: https://ceugaleria.com.br/desvendando-o-legado-de-vilem-flusser
디지털 시대인 지금, 기술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사례는 다양합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를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습니다. 네이버 마이박스, 구글 드라이브, MS 원드라이브 같은 서비스가 그 예입니다.
SNS 역시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입니다. 2024년 정보통신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세대가 SNS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인 및 친구와의 소통 등 교류를 위해’(평균 69.2%)였으며, ‘자신의 일상생활, 개인적 관심사를 기록 및 공유하기 위해’(평균 15.3%)가 뒤를 이었습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텍스트, 이미지, 음악, 영상 등의 콘텐츠를 대량으로 쉽고 빠르게 만들어낼 뿐 아니라, 서로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이처럼 클라우드 서비스와 SNS, 생성형 AI 같은 디지털 기술은 정보의 저장, 공유, 재창조 과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소멸을 거스르는 새로운 저항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플루서가 말하는 ‘죽음에 대항하는 반자연적 실천’이자,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반엔트로피적 행위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반엔트로피적 활동 기반에는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가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의 정의는 다양합니다. UNESCO는 ‘타인과 잘 소통하는 능력 및 사회적 관행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관련 연구에서는 오감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글쓰기와 말하기 같은 전문화된 커뮤니케이션, 개인·대인·그룹 등 층위별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아우르는 역량으로도 설명합니다.
플루서의 사유는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여 엔트로피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보를 보존하고(지키고), 분배하며,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는 다음의 세 가지 역량을 포함합니다.
첫째, 비판적 이해 및 보존입니다. 정보를 분석하고 진위를 따져 나의 것으로 저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올바른 공유 및 활용입니다. 정보를 맥락에 맞게 공유하여 부정확한 정보 확산을 줄이고 올바른 활용을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창조적 생성 및 발전입니다. 기존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고 소통하는 것을 통해, 협력적이고 창의적인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 사례는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탈중심화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려는 블록체인,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어선 협력을 끌어내는 메타버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리터러시는 엔트로피적 흐름에 저항하고, 혼재된 정보를 질서 있게 구성하며, 나아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출처: Dall-E 생성
최근 ‘계엄’과 관련된 많은 가짜뉴스가 SNS에 공유됐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사회적 질서와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SNS에 기록된 가짜뉴스들이 반복 공유되고 새로운 의견과 결합해 혼란과 무질서를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즉,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를 통해 모든 정보를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하고 선별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비판적 이해 및 보존을 해야 합니다. 또한 신뢰 있는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여 불필요한 확산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공유 및 활용이 이어져야 하며, 기존의 정보 한계를 넘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질을 높이는 창조적 생성 및 발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반엔트로피적 활동’은 일상에 있습니다. 책상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카카오톡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등 많은 곳에서 엔트로피에 맞서고 있습니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리터러시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의도적으로 죽음과 고독을 피하려 노력하는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24). 세대별 SNS 이용 현황. URL: https://www.kisdi.re.kr/report/view.do?key=m2101113025790&masterId=4333447&arrMasterId=4333447&artId=1674096
Flusser, V. (1996). Kommunikologie. 김성재 역(2003). 코무니콜로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Ghasemi, H., & Rasekh, N. (2020). Identifying dimensions of communication literacy: Thematic analysis approach. Journal of Health Literacy, 4(4), 18-29.
Lucas, J. (2022, 2, 8). What is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LIVESCIENCE. URL: https://www.livescience.com/50941-second-law-thermodynamic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