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인사이트 제5화
권력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요? 딱히 떠오르지 않더라도, 어떤 영향을 받아 생각이 바뀌거나 특정 행동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때론 자연스럽게 정해진 규칙을 따르기도 했을 것입니다. 직장을 떠올려 보세요. 방침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윗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먼저 말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권력’이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권력이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정한 형태를 갖춘 제도와 구조도 아니며, 개인이 지닌 능력 또한 아니라고 밝힙니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사회 내부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어떤 관계 속에 작용하는 힘(power) 모두를 의미합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권력이 우리 일상에 있는 모든 것에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푸코는 역사적 연대기를 통해 권력이 인간의 신체와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를 ‘생체권력’(bio-power)이라 정의하며, ‘규율’(discipline)과 ‘생체정치’(bio-politics)로 구분했습니다. 규율은 개인을 통제하는 힘으로 학교, 군대, 병원, 감옥 등에 작용하는 권력입니다. 글 첫머리에 말한 직장의 방침 역시 규율에 속합니다. 생체정치는 집단의 생명을 다룹니다. 거시적 관점으로 출생률, 발병률, 환경, 장애 등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을 의미합니다. 팬데믹 당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같은 조치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푸코는 권력과 지식이 상호 의존한다고 보았습니다. 지식 속에 권력이 있고, 권력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식은 ‘담론’이라는 방식으로 분배됩니다. 담론은 대화, 사회, 정치, 문학, 지식, 법규, 과학 등 모든 방면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텍스트와 언어를 포함합니다. 이 글 역시 사회학적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푸코는 권력이 담론과 지식을 통해 인간을 통제한다고 보았습니다. 가령 17세기 유럽은 성(性)이 자유롭게 표현되었지만, 19세기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득세하며 은폐되었습니다. 육체적 쾌락이 죄의식과 함께 침묵 된 것입니다. 푸코는 이러한 변화가 사회적 통제와 권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즉, 성적 욕망이 성교육과 법이라는 ‘담론의 지식 권력’으로 통제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푸코는 사람들이 이런 권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권력이 전적으로 파렴치하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담론의 지식 권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수동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까요?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 ‘비판적 리터러시’입니다. (여담이지만, 푸코의 사유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집니다. 전기는 권력을, 후기는 ‘자기’라는 개념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처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관련 연구들은 비판적 리터러시가 단순한 문해력을 넘어 ‘언어와 텍스트’가 특정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을 전달하는 역량이라는 점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비판적 리터러시를 통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권력관계 속에 텍스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이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생각해 볼 점은 언어와 텍스트가 담긴 담론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미디어’가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 담론은 사람의 사고와 신체를 통제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이 결합합니다. 결국, 비판적 리터러시는 미디어에서 접하는 ‘담론의 지식 권력’을 드러내고, 이 이면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파악하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역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역사 수업에 한 중학생이 질문했다. “왜 우리 교과서에 특정 인물의 업적만 볼 수 있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왜 없나요?” 교사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렇게 답했다. “교과서에 모두 담을 수 없으니, 중요한 사람만 넣은 거야.” 학생이 다시 물었다. “그럼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건가요?”』
교과서는 역사라는 담론을 모아놓은 미디어(책)입니다. 교과서에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국가, 교육기관, 미디어 산업체 등의 기관이 선택하고, 강조하며,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특정 사실을 강조하는 교과서의 담론을 통해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사라진 역사 속에도 중요한 내용이 존재하지만, 권력은 이를 지우고 자연스럽게 함께합니다. 정부 기조에 따라 꾸준히 논란이 되어온 ‘교과서 용어 전쟁’ 사례가 같은 맥락입니다.
『어느 날, 한 대학생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노숙자 문제를 다룬 두 가지 언론사의 사설을 봤다. 각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도시 노숙자 문제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도시 노숙자 증가에 따른 새로운 복지 정책 필요하다.”
같은 날과 같은 도시의 노숙자 증가 문제를 다루는 사설임에도, 두 기사가 전혀 다른 시각을 반영하고 있음을 학생은 깨달았다. 첫 번째는 노숙자 문제를 위험 요소로 보고 있으며, 두 번째는 사회적 원인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학생은 두 사설을 비교하며,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고민했다. 결국 복지에 관심이 커진 학생은 사실을 다른 SNS에 공유했다.』
가정이지만, 이 이야기에 제시한 사설은 노숙자 통계(지식)와 안전 또는 복지라는 특정 시각을 담은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설 내용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과 감정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행동까지 이끌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판적 리터러시는 이러한 담론을 해석하고, 또 다른 관점을 고민해 보며, 대안 역시 제시할 역량을 의미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떠올려 보지요. 미디어들은 끊임없이 위험과 규제의 담론을 쏟아냈습니다. 사망률, 감염률, 병상 부족, 마스크 쓰기 등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개념이 반복해 강조되었으며, 초반에는 확진자의 개인 동선까지 공개되어 비판했고, 자신을 통제했습니다. 관련 가짜 뉴스도 횡행했습니다.
물론 공공의 안전을 위해 국가적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문제는 팬데믹 담론이 사망률 같은 지식을 통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의학 지식으로 특정 규율을 정당화했으며, 의견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비판적 리터러시는 우리가 이러한 사회적 담론을 눈감은 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팬데믹 그 이면을 분석하고, 사실 판단을 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것을 보고 읽었을 때,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일지는 담론과 그 안에 작동하는 권력에 의해 결정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접하는 언어와 텍스트에 권력이 함께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를 해체하고 다시 쓰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능동적으로 담론을 분석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며, 새로운 국면을 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비판적 리터러시입니다. 이 글 역시 다시 들여다봅시다. 어떤 권력이 함께하는가요? 이제,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참고문헌
Agamben, G. (2006). Che cos’e` un dispositivo?, L’amico, che cos’e` il contemporaneo?. 양창렬 (역) (2010).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 서울: 난장.
Behrman, E. H. (2006). Teaching about language, power, and text: A review of classroom practices that support critical literacy. Journal of adolescent & adult literacy, 49(6), 490-498.
Deleuze, G. (1986). Foucault. 권영숙·조형근 (역) (2015). <푸코>. 서울: 새길아카데미.
Foucault, M. (1971). L’ordre du discours. 이정우 (역) (2014). <담론의 질서>. 서울: 중원문화.
Foucault, M. (1976). Histoire de la sexualité: Tome 1 la volonté de savoir. 이규현 (역) (2011).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 서울: 나남.
Foucault, M. (2011). Leçons sur la volonté de savoir :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0-1971) suivi de Le savoir d'Oedipe. 양찰렬 (역) (2017). <지식의 의지에 관한 강의 1970-71년)>. 서울: 난장.
Janks, H. (2013). The importance of critical literacy. In Moving critical literacies forward (pp. 32-44). Routledge.
Luke, A. (2013). Defining critical literacy. In Moving critical literacies forward (pp. 19-31). Routledge.
White, R. E., & Cooper, K. (2015). What is critical literacy?. In Democracy and its discontents(pp. 21-35). Brill.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URL: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