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코네 사람들

바라나시 게스트하우스 '쿠미코 하우스', 2002년 이야기

by Sim Woojin

도착하고 머물다가 떠남으로,

삶과 여행은 같다.


길고 짧은 여행을 이어 붙이면 삶이 되고, 삶을 쪼개면 각각의 여행이 된다.

나는 만나고 관계맺고 헤어짐으로

지난 삶을 매일의 여행으로 꾸려갔다.


삶이 그렇듯, 나는 그시절 가난했으므로, 여행은 고달팠다.

맨발의 아이들이 새까맣게 달려들어 1루피를 구걸하는 곤고한 곳에서
비행기 타고 온 여행자가 가난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인도는

그저 더웠고,

갈 수 있는 숙소는 각자의 이유들(더위, 소음, 바퀴벌레떼 등등)로 불면의 밤을 제공했으며

먹었던 음식들은 하나같이 설사 없는 소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만나야 했던 영어를 할 줄 아는 인도인들은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정신을 산란하게 해 주었던 덕분으로

몸과 마음이 매일 피로했고 긴장했으므로 누구 못지 않게 가난할 수 있었다.


대체 왜, 편안한 집과 따뜻한 밥을 놓아두고 굳이 이 고행을 하자고 여기까지 왔나...

하루에도 몇번씩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붓던 나날들이었다.

세상에는 나라가 백개도 넘게 있는데, 나는 왜 하필 인도에 와서 사서 고생인가.. 가 욕설의 주요 컨텐츠였다.



그러다가 귀국을 2주 앞두고 쿠미코하우스에 묵게 되었다.

기차역에서 스쳐간 일본인에게 우연하게 들었던 정보 덕분이었다.

거기서 3일을 지낸 후, 남아있던 다른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 전까지 그곳에서 보내기로 하였다.


여관 주인 쿠미코상은 말을 걸어도 별로 답하는 법이 없었다. 아마도 일본어만 썼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웃으면서 같이 사진은 잘 찍어주었던 것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쿠미코상은 조금 나이를 먹었을 뿐 여전히 건재하다>


쿠미코상은 일본인이고 남편은 인도인이다.

예술가라 했다.

겉보기에는 아줌마보다 스무살은 많아보였는데, 인도인을 겉보기 나이로 가늠할 수는 없어 추측만 할 뿐이다.

쿠미코상은 숙박을 제공하기 위한 거의 모든 일을 했고 예술가 남편은 한량처럼 세월을 흘렸다.

암사자가 사냥을 해 오면 숫사자가 그 먹이를 먼저 먹는, 세렝게티 야생사자 부부를 연상케 하는

친환경 생태적 부부간 분담이었다.

구글에 찾아보니 여전하신 것 같다.


사실은 확인된 바 없으나,

인도로 여행 온 쿠미코가 현재의 남편과 로맨스에 빠져 눌러앉았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쿠미코의 사례 때문인지, 당시 이 동네 인도인 남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여자를 잡으면 레스토랑을 차릴 수 있고, 일본여자를 잡으면 호텔을 가질 수 있다."는 신화가 있었다 들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이 동네 남자들은 일본과 한국의 여성 여행객들에게 차례로 들이대곤 했다.

다만 그 작업의 기술이 심하게 낙후한 탓에, 한국/일본 여행객 여성들은 성폭력의 아찔했던 경험들을 토로하곤 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많이 가는 숙소마다 장기체류중인 중년의 일본인이 한명씩 종종 보였는데 쿠미코하우스에도 있었다.

그 분은 식사시간이 되면 준엄하게 "밥먹자"며 사람들을 불러모았고

뭔가 무례한 숙박자가 있으면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낡은 일본책을 읽고 있었으므로 역시 말을 붙여 볼 기회가 적었다.

다만 한가한 어느 오후, 일본인 친구에게 배웠던 서툰 일본어 몇마디로 붙여보았더니

무뚝뚝하게 대답만 하다가 슬쩍, 때가 꼬질한 대추야자 몇 개를 집어주었다.

내가 그걸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뭘 먹던지 다 설사해 버렸을테지만서도....


쿠미코하우스를 알게 되어, 가난이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태어나 처음 해 보았다.

쿠미코하우스는 하루에 80루피(당시 돈으로 하루 2천원 이내)에 1박 2식을 제공해 주었다.

나중에 운이 나빠 인생이 꼬이고 가족에게 버림을 받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200만원만 있으면 3년 정도는 여기서 보낼 수 있을 것 계산을 당시에 했던 것 같다.



쿠미코하우스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처참하게 지저분한 곳이었다.

밥먹는 비주얼은 대략 이런 식이었고,


잠자는 비주얼은 또 이런 식이었다.


밤늦게까지 도미토리에서 술을 마시고 물담배를 하다가

일본애들은 '방그'라고 하는 알 수 없는 식물을 섞은 라시나 케익을 먹으면

그 후로 환상을 헤메이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고 새벽녘에 일어나면 보는 익숙한 광경인 것이다.



제목은 20세기 여행인데, 왜 2002년의 여행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냈는지는 모르겠다.

이 시리즈가 끝나는 대로 20세기 이야기를 정리해봐야겠다.


나는 앞으로, 2002년 여름 쿠미코하우스에서 함께 했던,

이 사진에 등장한 새까만 청춘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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