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고
눈을 뜨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깊이 무너졌는지 알았다.
그날 내 안의 세계는 조용히 부서져 있었다.
몸은 천천히 회복됐지만,
내면은 조각난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멈춘 채 세상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이 가장 두려웠다.
엄마도, 어른도 아닌 채로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로 되돌아 간 듯,
심리적 퇴행을 겪고 있었다.
일상의 감각은 사라졌고,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벅찼다.
강하고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지만,
그날의 나는 어떤 역할도 감당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여전히 엄마일 수 있을까."
이 무너진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남아 있긴 할까.
그동안 믿어온 양육의 원칙은 흔들렸고,
아이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엄마로 살아온 모든 시간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진 것만 같았다.
그저 ‘존재하는 엄마’로 남는 일조차
그땐 너무 어렵고 막막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조차 조심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서라기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이 점점 낯설어지는 그 시간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늘 누군가를 이해하고 포용하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내가 더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로만 살아오면서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오랫동안 타인의 역할에 갇혀 살다 보니
나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한참을 고립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바람이 올라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이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마음부터 편안해져야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외로움 속에서 신을 찾았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붙들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새벽기도회에 나가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상처 입은 영혼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회복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서적 회복은
기도만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대예배가 끝난 후, 소그룹 예배 시간.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나를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 같았다.
자꾸만 피하고 싶었고, 숨이 막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려움을 넘지 않으면
내 딸들을 지킬 수 없고
생계도 유지할 수도 없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두려웠지만,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도망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으며
비록 작고 느린 걸음일지라도
두려움을 껴안은 채, 그 자리에 서 보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빛이 두려웠다.
예배시간 내내 얼굴이 달아오르다가 얼어붙기도 했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마치 말의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 이상해’
말없이 쏟아지는 시선이
조용히 나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불편한 자리를 견디면서
집에 돌아와 온 방을 떼굴떼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왜 또 그랬어..."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스스로를 책망하며 한참을 울고 나서야 겨우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예배를 마친 딸을 데리러 갔다.
나는 엄마였고, 가장이었고,
무너진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했기에,
나는 다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숨이 막히고,
눈길을 맞추는 일조차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들이 없었다면 버틸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아이들을 지킨 줄 알았지만
사실은 딸들이 나를 지켜준 셈이다.
딸들이 있었기에
삶이 내미는 고통을 견딜 용기를 냈고,
회복과 변화의 힘도 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내 삶의 의미였고 전부였다.
그리고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끝까지 붙든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