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간 엄마 이야기
이미 무너진 그 자리에서, 나는 대인기피증과 싸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버거웠고, 작은 시선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일조차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생계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몸과 마음이 바낙 났지만, 일어나야 했다.
예전처럼 이동 시간이 길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장은 이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출퇴근이 짧고 일이 덜 버거운 일을 택했다. 그건 생존이자, 마음을 지키기 위한 방패였다.
그 시절엔 ‘돈’이 삶의 해답쯤 된다고 믿었다. 급여가 높기만 하면 주저 없이 회사를 옮겼다.
하지만 늘 야근에 시달렸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미뤄졌다.
그 공백은 결국 소통의 단절로 돌아왔고, 서로의 마음은 서서히 멀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퇴근 후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
그게 내게는 세상 어떤 것보다 절실했다.
마음속엔 “이번엔 삶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조용한 다짐이 있었다.
면접 본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돌아온 답변은 복지 관련 업무 경험이 없어서 채용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순간 움찔했지만, 곧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가진 단 하나의 무기가 떠올랐다.
회계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그건 간절함이었고, 내 전문성을 향한 마지막 믿음이었다.
일상은 무너졌지만, 숫자 속에서는 여전히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설득했고, 다시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월급은 적었지만, 업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집과 가깝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회계 시스템은 뒤엉켜 있었고,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했다.
나는 묵묵히 하나씩 정리했고, 회계 보고 프로세스를 다시 짜며 조직 전체의 질서를 조금씩 세워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대인기피증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회의 중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노트에 시선을 고정했고, 내 눈빛 속 불안이 들킬까 두려워 짙은 색의 렌즈 안경을 썼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늘 불안했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야 해.’
그건 내 생존이자,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
1년쯤 지나자, 회사 갈등에 가족 문제까지 겹치며 몸이 무너졌다.
허리 통증이 다리까지 번졌고, 결국 나는 2년 가까이 일을 놓고 누워 지냈다.
누워 지내는 동안 가장 괴로웠던 건, 아이들 앞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었다.
어느 날, 큰딸이 말했다.
“어렸을 땐 엄마가 능력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 정말 멋진 사람인 줄 알았어.”
그 말은 나를 찔렀다.
한때 내 아이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2년의 공백 끝에 다시 돌아간 회사는 이미 낯선 풍경이 되어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회계 불신이 깊어져 있었고, 몇 년 치 자료를 다시 정리해야 했다.
야근은 일상이 되었고, 초등학생이던 둘째를 데리고 밤 10시, 11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피곤하고 졸린 아이가 의자에 기대 꾸벅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 딸은 과연 학교에서 집중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놓고,
그토록 바라던 시간을 붙잡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아이를 내 일상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또 다른 희생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게 되었다.
자유를 꿈꾸며 마당을 탈출한 암탉 ‘잎싹이’,
그리고 부모를 잃은 오리알 ‘초록머리’
잎싹이는 초록머리를 품에 안고 홀로 키워낸다.
초록머리가 오리 무리의 비행대회에서 1등을 하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순간, 잎싹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하늘을 날 생각을 못했을까.”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왜 하늘을 날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다 속으로 항의하듯 되뇌었다.
‘아니, 내가 하늘을 나르면 아이들은 누가 지켜?’
그 질문이 오래도록 마음속을 맴돌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나에게 계속 묻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뭘까?’
‘나는 뭘 좋아하고,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뭘까?’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 나는 나를 잊고 살았다.
아무것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회사 게시판에 ‘댄스 모임 모집’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스스로를 ‘삼치’라며 웃어넘겼지만, 호기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결국 첫 모임 날,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봤다.
그리고 몇 동작을 따라 해 봤다. 뜻밖에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랜 회계 업무로 익힌 루틴 감각이 춤의 리듬과 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도 좋은 걸 줄 수 있어.’
그 믿음 하나로, 나는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따라 하던 내가,
어느새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됐다.
동작 하나하나가 낯설고 어렵기만 했지만,
매주 빠지지 않고 나가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동작은 내가 먼저 이끌어 주기도 했다.
리드하는 건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다음 동작 뭐죠?” 하고 물어보는 순간,
내 안의 ‘작은 책임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한 박자씩 리듬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누군가 빠지려는 기미가 보이면, 조용히 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그저, 함께 가고 싶었다. 그래서 살짝, 옆에서 마음을 밀어주었다.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이 모임이 유지되는 건 당신 덕분이에요.”
그 말은, 내 안의 얼어붙은 마음을 천천히 녹였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내 빛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었던 잎싹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심스럽게 날갯짓을 다시 그려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