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다시 '나'를 회복하다
조물주가 있다면, 그는 나를 구원하기 전에
먼저 나의 절실함을 시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의 삶은 진흙탕처럼 뒤섞여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버티는 동안
손에도, 마음에도 진흙이 묻었다.
무엇 하나를 더 얹는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질 만큼
모든 게 벼랑 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이 왔다.
지역 문화예술 커뮤니티에서 연말 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낭독극’ 팀에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사실 그 기획은 이미 SNS를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마음의 힘이 바닥이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 문틈으로 다시 기회가 스며들었다.
기회란, 늘 기다려주지 않는다.
두려웠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순간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진흙 묻은 손으로라도
그 기회를 붙잡았다.
그건 나를 다시 세상으로 이끄는 장면이었다.
실은, 내가 그만큼 간절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의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숫자와 보고서로만 답하던 사람이었다.
누가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으니 점점 더 나 자신도 잃어갔다.
그래서 ‘말하는 자리’가 필요했다.
내 입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
그건 자존감을 조금씩 되살리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 생각을 정리하고,
소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 무렵,
낭독극 연습과 공연은
나의 내면 깊은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무대 위에서 나는 오랜만에 살아 있는 나를 느꼈다.
그때 다짐했다.
이제 내 안의 인간성을
직업이 희생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내 역동을 다시 살려내야만 했다.
낭독극 모임도 댄스모임처럼
구성원 하나하나가 꼭 필요한 자리였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흐름이 끊어졌고,
그 균형을 잇기 위해 나는 자연스레 또 움직였다.
일요일이면 참석자 댓글을 독려했고,
답이 없는 사람에게는 조심스레 톡을 보냈다.
참석을 망설이는 사람에겐 전화를 걸어
그 마음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원들이 내게 말했다.
“이 모임이 유지되는 건, 당신 덕분이에요.”
처음엔 어색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뜨겁게 울렸다.
댄스모임에 이어 또다시 들려온 그 말.
그때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내가 있어서 어떤 자리가 이어지고 있었구나.’
그건 오래전 잃어버렸던 감정,
‘존재감’이었다.
그 감정이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두려움은 있었지만,
나는 위축된 마음을 달래며
댄스모임, 낭독모임, 마을모임...
여러 자리에 나를 던졌다.
눈에 띄는 역할을 한 것도,
특별히 기여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을 사람들은 나를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 즈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놀랐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그들은 나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한 걸까
왜 그들은 나를 믿을 수 있다고 느꼈을까.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조용히 있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가고자 했던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믿음처럼 느껴졌던 건 아닐까.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의 대인기피증도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