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가, 나를 자각하게 했다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
그 말은 날카로운 화살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자꾸 마음을 맴돌았다.
가만히 있다가도 불쑥 떠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나도 딸이기에, 딸의 마음을 더 잘 안다고 믿었다.
어릴 적 나는 엄마를 돕기 위해 늘 눈치를 살피고, 동생들을 챙기며 자랐다.
시험 기간이면 엄마가 가장 힘들어할 일을 먼저 해두고,
“엄마, 나 이제 공부할 테니 부르지 마”하고 말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는 늘 나를 다시 불렀고,
나는 참고 또 참으며, 다시 견뎠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늘 지쳐 있었고,
내 앞가림조차 버거운 날들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늘 ‘참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아이들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길 바랐다.
형편보다 마음을 따르는 선택을 하길 응원했다.
그 길의 책임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다.
감정적으로 무너졌던 시기,
바닥난 자존감으로 생계와 양육을 함께 감당하는 일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립이었다.
나는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썼고,
단단해지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며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그 여정 속에서,
딸들은 어느새 나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들이 나를 좀 알아주기를 바랐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정서적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한 엄마일수록
자신이 받지 못한 따뜻함을 자녀에게 기대하게 된다고 한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자
나는 심한 우울과 무기력,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감정에 휩싸였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자주 말한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희를 키우는지 알아?”
그 말은 사랑이지만,
동시에 아이에게는 무거운 짐이 된다.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너무 외로웠고,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의 한마디가 내 삶을 멈춰 세웠다.
“나는 엄마 남편이 아니야.
나는 엄마가 보호해야 할 자식이야.”
그 말 앞에서 나는 숨이 멎었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관계의 진실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제야 알게 됐다.
딸의 거리가 미움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걸.
사실 나는 딸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감정을 솔직히 나누는 사이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딸이 나를 밀어낼 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았고,
점점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가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할 때
자녀와의 경계를 허물고, 심리적으로 융합하려는 경향이 생긴다고 한다.
나 역시 딸과 그런 융합을 시도했던 것 같다.
융합이 일어나면 아이는 자신이 삼켜질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함입’이라 부른다.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이 아이에게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되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숨 막히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진짜 사랑은 붙잡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며 함께 서는 일이다.
나는 생계 속에서도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를 변화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춤을 추며 몸의 굳은 긴장을 풀었고,
연극 무대에 서며 오랫동안 묵혀둔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마음이 조금씩 열렸고,
그 경험이 나를 다시 세상과 연결시켰다.
이제는 그 여정의 또 다른 시작으로,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면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의 언어를 배워가고 있다.
이 길은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회복하고,
이 회복이 가족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