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상처는 어디서 왔을까

나를 지나 딸에게까지 온 감정의 역사

by 심우연

나는 늘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생계와 양육, 책임과 감정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발을 잘못 디디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늘 긴장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세상에 ‘아무 일도 없는 삶’은 없다.

예기치 못한 일이 닥치면,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불안 속으로 숨어버렸다.

얼굴만 가리고, 엉덩이는 드러낸 채 웅크린 아이처럼.

떨리는 손으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긴장의 날들을 견뎌야 했다.


어린 시절 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참는 게 미덕이었고, 그래야 부모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나로서 사랑받기보다 ‘역할’로 사랑받는 법이 내 안에 뿌리내렸다.


엄마도 그랬다.

부유한 집의 장녀로 호강하던 엄마는

열일곱 살에 고아가 되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던 아이가

갑자기 여섯 식구를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할아버지를 간호하며 감정을 봉인한 채 살아야 했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삼키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그때부터 엄마는 신경증적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삶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내 감정과 욕구를 더욱 깊이 묻었다.

늘 다른 사람의 필요에 맞추며 살았다.

“엄마니까.”

“가정의 평화가 먼저니까.”

그렇게 내 인생을 늘 뒷전으로 미뤘다.


홀로 생계와 양육을 감당하며

외줄 위를 걷는 곡예사처럼 살았다.

한 발만 삐끗해도 끝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무너질까 봐 두려웠고, 그래서 더 완벽해야 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나를 보호하는 갑옷이 아니라,

숨을 막히게 하는 가면이었다.

작은 일에도 긴장했고, 불안에 쉽게 휘청였다.

머리가 아프고, 복통과 설사를 동반한 호흡곤란까지 겪었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강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면은 늘 불안과 두려움, 자기 비난으로 가득했다.

나는 신경증 속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딸이 울부짖듯 외쳤다.

“엄마, 제발 그 상처에서 좀 나와.”

그때 나는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딸은 내 불안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은 나의 신경증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다.

엄마인 나는 딸에게 사랑이 아니라, 불안의 공기였다.

그래서 딸은 나를 밀어냈다.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제야 알겠다.

내가 딸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건

내 불안과 외로움이었다.

같은 배를 탄 동지처럼, 나의 두려움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건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엄마도 신경증, 나도 신경증,

감정의 되물림을 끊는 일, 그건 결국 내 숙제였다.

신경증은 나를 번아웃으로 몰고 갔지만,

그 속에서 내 몸의 메시지를 들었다.

“이제 그만 버티자. 내 마음도 좀 돌봐줘.”


내가 행복해야, 내 곁의 사람들도 숨 쉴 수 있다.

억눌린 감정을 인식하고,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라고 말해줄 때

비로소 나의 치유가 피어난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신경증의 가면을 벗어나고 있다.

이것이 나와 딸을 함께 살리는 길이라 믿는다.


완벽해야 했던 나, 이제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한다.

이게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