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나 사이, 말로는 좁히지 못한 거리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예전에는 ‘웅변대회’라 불리던 그 무대.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나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말을 꺼내는 데 서툴렀고,
생각은 늘 마음속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반면, 주저 없이 말하는 친구들은 멀고도 선망의 존재였다.
전교생 앞에서 수상자들이 웅변을 하는 장면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나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작은 불씨가 있었다.
그 불씨는 '넌 안돼'라는 내면의 속삭임에 늘 꺼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반에서 대회에 나갈 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셨다.
“너, 한번 해볼래?”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고는 싶은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요.”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네가 책임지고 한번 해봐.”
겁이 났지만,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창피만은 당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며 연습을 시작했다.
서점에서 웅변 관련 책을 한 권 샀다.
글의 흐름과 강조점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청중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스스로 다듬어 보았다.
무대에 서는 연습도 빠지지 않았다.
매일 새벽같이 학교에 도착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상상 속 청중을 향해 웅변을 외쳤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말은 또렷해졌고,
목소리는 점점 단단해졌다.
대회 당일, 긴장으로 손이 떨려
손바닥에 ‘사람인(人)’을 그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무대에 서자 여전히 떨렸지만, 뜻밖에도 1등을 했다.
친구들도 놀랐고,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내주셨다.
그날, 내 안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작게 숨 쉬던 자존감이 등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내 목소리는 작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간절히 원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지금껏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말에 자신이 생기자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딸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설명했지만, 딸의 눈빛은 닫혀 있었다.
내 말이 닿지 못한 마음 앞에서,
나는 벽에 대고 말한 듯한 허탈함을 삼켰다.
그제야 깨달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말이 아닌 ‘마음’이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내 말투, 태도, 삶의 방식까지 되짚게 했고,
그 끝에서 오랫동안 눌러온 감정을 마주하게 했다.
숫자의 세계에서 살아온 회계경력은 감정을 눌러가며 버텨온 세월이었고,
예술의 세계에 사는 딸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딸에게 건넨 말들이 번번이 되돌아올 때마다 마음 한편이 조용히 쑤셨다.
그 감정은 오래 머물렀고, 결국 나는 결심했다.
딸이 머무는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낯설고 생소한 지역 예술인 모임에 발을 들였다.
가랑비에 옷 젖듯, 예술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언젠가는 딸의 세계도 조금은 스며들 듯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항상 계획 속에 살던 내게 낯설고 어색했다.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화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스러웠고,
쓸모없는 시간처럼 느껴져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했다.
내 말투나 표현 방식이 낯설었을 텐데도,
그들은 오히려 나를 능력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받아주었고,
모임에 참석하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꼭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시간이 아니어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계속 그 자리에 나갔다.
모임에 나서는 날이면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세 번 연속으로는 빠지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만큼은 지켰다.
그것은 딸을 향해 조금씩 내딛는 내 방식의 사랑이었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딸과 나 사이에 말보다 느린 다리,
눈빛보다 조심스러운 손길.
나는 그런 방식으로 딸에게 닿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느린 다리 위에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너무 많이 늦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선의 시기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배우기 위한 첫걸음을 이제야 내디뎠다.
말로는 잡히지 않던 감정들이 글이 되자 조금씩 흘러나왔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 그날의 내 표정,
사소한 오해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끄러움까지.
글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이제, 말로 하지 못한 마음은 글이 되어 흐른다.
닿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언제나
딸에게 조용히, 따뜻하게 스며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