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나, 같은 진심 엇갈린 마음
말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던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말의 힘'을 실감했다.
말은 생각을 꺼내 세상과 연결하는 도구였고,
누군가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의 힘은 딸과의 대화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나는 ‘말하는 법’은 배웠지만,
‘감정을 전하는 말’은 배우지 못했다.
딸과의 대화에는 늘 닿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말을 잘하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진심은 어긋났다.
딸이 왜 화를 내는지,
왜 나를 밀어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전하려 했지만,
그 진심이 닿지 않을 때 느껴지는 막막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깊고 무거웠다.
말을 전할수록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입을 열었지만, 내 말이 벽이 되는 기분.
그 침묵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대화를 시도할수록 돌아오는 건 침묵이거나 날 선 반응뿐.
말을 꺼낸 뒤에는 공허함과 혼란만 남았다.
두 눈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듯한 현기증.
결국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나는 현실을 따지고 책임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딸은 감각과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우리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말이 다르고 표현이 엇갈렸을 뿐,
서로를 향한 진심만큼은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진심이 있다고 해서 소통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딸과의 대화는 여전히 어렵다.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 그날,
우리 안에 쌓였던 말들은
결국 ‘이해받고 싶다’는 외침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왜 그렇게 다그쳤을까.
왜 그 짧은 순간조차 감정을 참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내 안에도 상처가 있었다.
이해받지 못한 기억, 참고 참다 터진 말.
딸의 반응을 보기 전에
감정의 벽을 쌓아두고 있었던 건
어쩌면 나였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해내는 데 익숙한 나.
책임을 먼저 떠안으며 살아온 나는
자립심은 갖췄지만, 감정을 나누는 데에는 서툴렀다.
내 말은 논리적이고 단단했다.
하지만 딸과 이야기하려 할 때면 감정이 먼저 날을 세웠다.
결국 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침묵의 순간마다,
말보다 침묵을 먼저 배워야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질문을 하면 혼났던 기억.
입을 닫으며 감정도 함께 닫아버렸던 시간들.
참는 것이 강해지는 거라고 믿으며 애썼던 날들.
그동안 감정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감정을 조용히 밀어두는 법을 배웠고,
그건 나를 지키는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내 딸에게 벽이 되었음을 그땐 몰랐다.
엄마로서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다.
그 노력이 딸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모든 수고가 부정당한 듯한 감정만 남았다.
그 순간의 감정은 억울함을 넘어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하는 절망에 가까웠다.
그런 절망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서툴러졌다.
마치 한겨울 벌판에 외투 없이 서 있는 듯한,
차가운 바람 속에서 가만히 떨고 있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딸이 내게 터뜨린 분노는,
내가 상처받을까 봐 꾹 눌러온 감정이
결국 터져 나온 건 아닐까.
그 감정의 내막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딸 역시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유난히 서툴렀던 건지도 모른다.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것을 두려워했을까.
마음은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인생의 중반을 지나며,
나는 지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서툴러질 때,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딸과 나,
말은 했지만 진심은 닿지 않았다.
아직 나는 딸의 마음을 모른다.
내 마음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 하나.
언젠가, 말이 아닌 방식으로라도
다시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지금 이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