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왼손을 숨겼을까

한 아이의 결핍이 세대를 건너 딸에게 닿기까지

by 심우연

나는 늘 왼손을 감췄다.

사람들 앞에서도, 엄마 앞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감춘 건 손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왼손은 내가 가진 결핍의 표식이었다.

그 결핍은 세상을 향한 움츠림이 되었다.


이 글은 움츠러든 마음을 천천히 펴게 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훗날,

딸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만든 시작이었다.


왼손잡이로 태어난 건 지금에야 개성이지만,

그 시절엔 '고쳐야 하는 결함'이었다.


연필과 수저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들어야 한다는 말이

집과 학교를 오가며 나를 따라다녔다.

그 강요는 내 손보다 마음을 먼저 움츠러들게 했다.

결국 마음까지 스스로 접어 넣게 만들었다.


왼손을 감추는 습관은 점점 내 안의 목소리까지 눌렀다.

질문도, 웃음도 줄었고, 마음의 문도 조금씩 닫혔다.


무언가를 물어보고 싶은 순간마다

말은 목구멍에 걸렸고,

대답 대신 침묵이 입을 메웠다.

나는 그렇게 말수가 적은 아이가 되었다.


"말을 못 하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의 한마디는,

내가 얼마나 오래 움츠러들어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고학년이 되던 해, 주산 수업이 시작됐다.

반 친구 대부분은 이미 학원에서 배운 상태였지만

나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주판은 오른손으로만 다뤄야 했다.


방학 동안 엄마가 학원에 보내주셨다.

그건 내게 처음 주어진 배움의 기회였다.


왼손으로 튕긴 주판알의 감각을 기억해 두었다가

식기 전에 오른손으로 따라 했다.

어설픈 손놀림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손끝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까지 몇 배로 연습했고,

마침내 7급 자격증을 땄다.


그 순간, 처음으로 숨이 깊게 들어왔다.

남들에겐 사소했겠지만,

내겐 세상을 바꾼 승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희망보다 절박함이었다.

‘오른손잡이로 고쳐야 한다.'는 벼랑 끝의 다짐이

나를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도전 앞에서 또다시 기가 죽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노력은 하는데, 이해력이 부족하니 책을 많이 읽어야 해."

담임선생님의 그 말은 나를 더 깊이 작아지게 했다.


책 한 권 끝까지 읽는 것도 버거운 나였다.

그러다 책꽂이에서『비밀의 화원』을 꺼냈다.

빛바랜 정원과 낡은 철문이 그려진 표지가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완독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다.

나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책 한 권조차 다 읽지 못한 나였기에

사전 속 단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그건 공부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언어였다.


졸업 무렵, 모은 용돈으로 국어사전을 샀다.

모르는 단어를 찾고,

뜻풀이 속 또 다른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닳아진 모서리엔 내 고군분투의 흔적이 남았다.


그만큼 절박했다.

이대로는 세상을 버틸 수 없다는 몸부림이었다.


세월이 흘러 작년 어느 날.

덩굴이 드리운 정원문이 그려진『비밀의 화원』공연 포스터를 우연히 봤다.


반가운 마음에 뮤지컬을 봤다.

무대 위 장면들이 어린 시절의 다짐을 불러냈다.

공연이 끝나자, 곧장 책을 펼쳤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오래 묵혀둔 숙제를 끝낸 듯했다.


책 한 권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묵은 마음을 마침내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그 마음은 조용히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속삭였다.


'애 많이 썼다.'


그 뒤로, 늦게 시작해도 끝까지 붙잡았다.

모르는 건 사전에서 찾고,

뜻풀이 속 또 다른 단어로 발길을 옮겼다.


한 걸음씩 이어가며 빈자리를 채웠다.

외부 인정보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벽 앞에 서 있다.

이번에도 넘어볼 생각이다.


그 벽 너머에도,

오래전 나를 움츠리게 했던 말이 기다리고 있다.

세월이 흘러, 그 말은 딸의 입에서 되살아났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손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되었다.

움츠렸던 손을 펴듯, 내 마음도 펴 보기로 했다.


그 마음을 세상 앞에 내어놓고,

언젠가 딸의 손을 마주 잡는 날을 기다린다.


아직은 닿지 않지만,

그 손으로 나와 딸을 함께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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