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말이, 오래 잠들어 있던 내 마음을 흔들었다
“엄마는 왜 내 마음에 관심이 없었을까.”
딸이 조용히 던진 말 한마디가
내 안에 오래 묻혀 있던 질문을 깨웠다.
어릴 적, 나는 그런 질문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누구도 내 마음에 관심 없는 건
세상이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너무 당연하다고 여긴 일에는
의문조차 품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방식대로 사랑하게 된다.
엄마가 나를 사랑했던 방식이
어느새 내 안에 고요히 스며들어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삼키는 법.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감당하는 법.
나는 그것들을 엄마에게서 배웠고,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딸에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참는 게 배려라고 여겼고,
말없이 견디는 걸 어른스러움이라 믿었다.
엄마는 늘 지쳐 있었고,
어린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자랐다.
마음을 꺼내면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기대는 늘 실망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차츰 표현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게 강하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뒤늦게 알게 됐다.
내가 지켜낸다고 믿었던 그 침묵이
딸에게는 외면처럼 느껴졌다는 걸.
어느 날, 딸이 조용히 말했다.
“엄마는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누군가의 마음이 궁금한지 아닌지를.
그런 걸 묻고 따지는 건 사치라고 여겼었다.
딸이 내게 던진 그 말은,
내가 엄마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엄마는 정말,
왜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그때 꺼내지 못한 그 질문이
딸의 입을 빌려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냈다.
나는 감정을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느낄 수는 있었지만, 표현에는 서툴렀다.
속마음은 점점 방향을 잃고,
침묵의 날들이 쌓이자
내 안의 흐름조차 놓치게 되었다.
스스로의 감정을 오랫동안 외면한 끝에,
딸의 마음에도 닿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먼저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해야 했다.
감정도 배워야 한다.
마음이 흐르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
나처럼 안으로만 삼키면,
감정은 결국 멈춰버린다.
굳어지고, 아프게 남는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야 알았다.
이해받지 못한 채 흘러온 삶 속에서
나는 혼자서 나를 이해하려 애썼다.
감정을 말로 꺼내는 대신,
공부로 세상을 해석하려 했다.
그중에서도 역사는 유독 어려웠다.
아무리 외워도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
이유를 몰랐다.
선생님께 조심스레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흐름을 이해해야 해. 그런 책을 한번 읽어봐.”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이해하는 법도, 묻는 법도 몰랐다.
책 한 권 고르는 일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흐름’이라는 말도
그땐 마음에 닿지 않았다.
이해는 늘 갈증처럼 남았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매듭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인류 이야기』시리즈를 우연히 만났다.
처음이었다.
역사의 흐름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온 건.
책 속 인물들은 더 이상
단순한 이름이나 사건이 아니었다.
그들도 선택하고, 흔들리고, 무너지는 사람들이었다.
역사가 외워야 할 지식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마음의 흐름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알았다.
이해란, 지식이 아니라 느낌이라는 걸.
세계사는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 같았다.
익숙하지 않기에 오히려 자유로웠다.
하지만 한국사는 달랐다.
감정을 눌러온 내 삶과 너무 닮아 있었기에
읽을수록 마음이 막히고 답답해졌다.
그래도 나는 책을 덮지 않았다.
그 대신, 이해의 문을 조금씩 열어갔다.
그건 단순한 공부가 아니었다.
닫혀 있던 내 마음을,
내가 처음으로 이해하려 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늘 한 발 늦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기분에 익숙했고,
조금 나아져도 애써 티 내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를 붙드는 한 문장이 있었다.
“괜찮아, 잘했어.”
자존감이라는 건
누군가에겐 당연했을지 몰라도,
내게는 오래 버텨낸 끝에 얻은 결과였다.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조상들도, 부모들도
억눌린 시대를 살아가느라
감정을 나누는 데 서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걸.
마음을 꺼내지 못한 채
참고, 견디고, 숨기다 보면
그 억눌림은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그 상처는 세대를 건너
내게로, 그리고 내 딸에게도 스며들었다.
딸의 마음을
짐작만으로 판단해온 날들이 떠올랐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던 건,
무표정한 얼굴 뒤의 감정을
한 번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내 편의에서 비롯된 믿음이었다.
나는 늘 바빴다.
감정을 살피는 일보다
일상을 버텨내는 일이 더 급했다.
그래서 딸 마음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정말, 딸의 마음이 궁금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먼저 묻고 싶다.
어릴 적엔 당연하다고 여겨
차마 꺼내지 못했던 그 질문을.
짐작하지 않고,
이젠 딸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다.
“그땐 어떤 마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