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갈등과 세대를 건너온 침묵을 마주하기까지
엄마는 내가 태어났을 때,
젖을 물리는 것조차 싫었다고 했다.
그 감정은 미움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낼 수 없던 시대가 만든 거리감이었다.
그 거리감 속에서 자란 나는, 어느 날 딸의 눈빛을 마주하고 오래 전의 나를 떠올렸다.
그 순간, 오래 잠든 무언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동네에는 "2월이면 아들, 3월이면 딸"이라는 말이 떠돌았고,
엄마는 2월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조용히 배를 쓸어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3월 1일, 초봄의 찬 바람 속에서 태어났다.
딸이었다.
엄마는 실망하셨다.
나를 낳자마자 돌아누웠고, 곧장 아들을 다시 갖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는 나를 품는 일조차 버거웠다고 말했다.
그 말엔 오래된 죄책감과 눌러둔 후회의 결이 배어 있었다.
그 시절 엄마는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 침묵이, 나의 첫 기억이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를 재우고 밭일을 나갔다.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르던 한낮, 집 안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방바닥은 온통 오물로 번져 있었다.
그 한구석에서 나는 땀과 똥, 오줌에 덮인 채 온몸이 말라붙어 잠들어 있었다.
작은 손가락만이 유난히 깨끗했다고 했다.
그때, 엄마의 가슴이 무너졌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외출하면서 내 손에 오징어 다리를 쥐어줬다.
그게 목에 걸려 숨이 멎을 뻔했다.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는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고 했다.
그 모든 기억을 엄마는 숨기지 않았다.
담담하게, 조용히 꺼내놓았다.
나는 놀랍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된 무기력 속에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 무기력은 내 말투와 일상에 스며들었고,
딸은 그 안에서 나처럼 자라고 있었다.
차가운 사랑을 견뎠고, 그 냉기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말았다.
그 사실이 미안했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보다 먼저,
내가 어떤 엄마였는지를 끝까지 마주하고 싶었다.
살아내느라 바빴던 날들.
일에 쫓겨 저녁이면 지쳐 돌아오던 그 시간들.
아이는 늘 혼자였다.
어느 날, 불 꺼진 아이 방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소리만이 고요를 깼다.
그 정적이, 어린 시절의 나와 겹쳐 보였다.
하지만 감정은 사치였고, 사랑은 침묵 속에 숨어 있었다.
그 침묵을, 이제 내가 끝내야 한다.
상처의 시작이 나였다면, 멈추는 사람도 나여야 한다.
엄마는 종종 말했다.
“아기 때 네가 누워 있으면, 그렇게 뽀얗고 예뻤어.”
“너무 예뻐서…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릴까 봐 겁났어.
그게 엄마에겐 벌처럼 느껴졌어.”
그제야 알았다.
나는 엄마의 죄책감과 함께 자라났다는 것을.
사랑보다, 두려움 속에 머문 아이였다는 것을.
나는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구나’보다는
‘엄마는 얼마나 벼랑 끝에 있었을까’라는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외면이 아니라, 버팀이었다.
살아내야 했던 삶이, 감정을 밀어내고 버티게 만들었을 뿐이다.
남자아이를 선호하던 시대, 엄마는 감정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받은 것을 '상처'라 부르고 싶지 않다.
칼에 베인 고통이 아니라, 스며드는 안개처럼 느린 슬픔이었다.
그렇게 스며든 감정은, 모르는 사이 딸에게까지 번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딸이 시선을 거둘 때면, 그 눈빛 속에 묻혀 있던 어떤 말이 들리는 듯했다.
어느 저녁, 부엌 창으로 기울어드는 빛 속에서
딸은 고개를 숙인 채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오래전 내가 보였다.
"왜 나는 혼자였어?"
그 질문이 오래된 침묵을 건드렸다.
아마도 그건, 오래전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실직하고 나서야,
엄마에게서 시작된 감정의 고리를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삶이 내게 말했다.
"이제 멈춰."
실업급여라는 작은 안전망 덕분에 처음으로 내 안을 들여다봤다.
오래 묵은 슬픔과 고통이 생각보다 조용하고, 깊게 나를 흔들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만,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시간을 견딘 것뿐이었다.
그 틈에서 나는 외로움을 배웠다.
말로 꺼내지 못한 무심함이, 우리 모녀 사이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를 걷어내려면,
그 속에 잠든 나를 먼저 만나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잊힌 기억의 문을 열어, 오래 묻혀 있던 나를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