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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Oct 19. 2024

가장 힘든 일

나의 삶에 대한 책임


몇 개월만 있으면 회사에 입사한 지 삼 년이 된다. 입사 초기만 해도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언제 삼 년을 다 채우나' 싶었는데, 시간은 참 빠르고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일머리도 없다.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 맞지 않은 인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공적인 단체생활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과 사회적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지만.


종종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친구들로부터 받을 때도 있고 같은 회사 임직원으로부터 받을 때도 있는데, 나에게 직장생활이란 힘든 점과 어려움이 복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한 이유를 도출하기가 힘들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다만 회사에서 가장 우울해지는 순간을 찾으라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드는 순간을 고르겠다. 이것은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나를 모함하거나 탓하는 상황이 아니다. 어떤 오해가 있기도 하고, 내 의도가 전혀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나의 실수나 잘못이 전제로 깔려 있다. 나를 혼내고 다그치는 사수나 상사를 무조건 원망하고 탓할 수는 없다. 내 손에서 일어난 잘못 역시 존재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저지른 일 역시 내가 책임져야 할 일.


그런데 며칠 전에 실수를 저질러 혼났을 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 것이었다. 이제 막 입사했을 때야 업무에 미숙하고 헷갈리는 부분도 많다 보니 불려 가서 혼나는 건 다반사였지만, 지금의 나는 입사한 지 거의 삼 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아닌가. 물론 경력 차이가 무조건 실력 차이로 이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성급한 결론은 너무 섣부르다. 십수 년 동안 업계에서 일한 상사들도 이따금 내게 기본적인 업무에 관해 질문하고, 며칠 이사님으로부터는 "학벌 좋다고 회사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하는 업무가 다르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역시 동의하는 부분.


그러나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양면성과 불완전함이 있다지만 회사 일은 최대한 깔끔하고 실수 없이 끝내야 모두에게 만족스럽고 뒤탈도 없지 않은가. 상사에게서 칭찬과 격려를 듣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입사한 지 몇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이런 걸 몰라?" 같은 말을 들으면 기가 죽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라고 믿는다.


쓸모를 위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어딘가에 쓸모가 있기 위해 태어나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자리'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서 나는 있으나 없으나 한 존재. 직장에서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평을 받는데 어찌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내 존재 가치의 귀퉁이가 조금씩 바스러지는 듯한 순간을 버텨내야 하는 일이다. 한창 바쁠 때 급한 업무가 밀려오거나 내 담당이 아닌 일을 내가 처리하는 다소 부당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에 염증과 미움이 돋아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가라앉고 며칠 지나면 까먹기도 한다. 보편적인 직장은 수직적인 관계이므로 내게 발언권이나 거부권이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업무상으로 발생한 갈등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는 치졸한 마음을 가지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사람에게 '가치'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사실은 안다. 그런데도 자꾸 나 자신존재 가치를 생각한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가늠하거나 은연중에 무시할 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 혐오스럽게 여겨 타파해야 마땅한 마음이 아닌가!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조금씩 달라진다고 말한다. 회사에 있는 나는 그냥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원 하나일 뿐이지만, 집에 있는 나는 매일 끼니와 건강이 걱정되는 소중한 자식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모든 인간이 똑같다. 내가 남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없고 남이 나보다 더 소중한 이유도 없다.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는 중요하고 소중한 인간인 것.


이런 잡생각은 대체로 나의 일상에 큰 쓸모가 없지만, 회사생활을 하다가 힘겹고 서글퍼지는 날이 오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견뎌낸다. 없느니만 못한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그렇다고 나의 가치가 오로지 회사나 직장에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면적이고, 일괄된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단순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나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생명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지만 결국 나는 나의 생애 전반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매일 열심히 일한다. 돈을 벌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출근하는 길은 언제나 고난이지만 그래도 하루 더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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