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애사심(愛事心)'이었다면 가능성이 조금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그리고 일보다는 월급을 사랑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어쨌든 일을 사랑해야 회사도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업무는 뒷전이고 회사 생활에만 충실한 사람은 다른 의미로 사회적이다. 업무 능력 대신 아부 능력으로 살아남기를 택한 부류는 대체로 간사하고 얄밉지만 존경스럽기도 하다. 사회성 없고 눈치 없는 자가 도태되고 낙오되는 냉혹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충분히 현명한 선택이다.
나에게 애사심은 없다. 처음부터 정을 붙일 생각이 없었던 사람처럼 멀다. 여전히 회사는 너무 딱딱한 이름이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다. 관심처럼 보여도 대부분 인사치레거나 좀 더 선을 넘어서 개인적인 참견에 도달하기도 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MZ의 기본적 덕목이라 말하는 개인주의를 중요하는데,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보고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무심하게 지나치는 행위는'요즘 세대의 개인주의'로 통용된다. 그러나 무관심이나 도덕심 결여는 개인주의가 아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사상은 세대 간 차이만으로 분리할 수 없다. 그저 개인(個人)의 입장과 시각 차이가 존재할 뿐.
다만 집단주의가 애사심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사회생활을 유하게 견뎌내기 어려운 성정임이 확실하다. 사실 사업체, 회사, 직장 따위의 사회적 집단은 중요한 존재다. 국가의 경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고, 생계유지를 위한 급여를 지급하며, 급여를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한 이들은 곧 소비자가 되고, 그렇게 나라에 돈이 돌고 세금이 걷히고…. 경제 관련 지식은 없지만 아무튼 대충 이러한 구조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일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고 경력도 중요하고 사회 활동도 중요하다.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은 건 열 걸음 앞에서 붙잡힌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뿐이다.
내가 회사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핑계를 앞세워 사랑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사를 사랑할 이유는 없다. 손해는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더 힘들고, 더 빨리 지칠 뿐이다.
첫 번째는 시스템을 향한 불가해. 어떤 일이든 손에 익기 전까지는 어렵다. 당연하다. 당장 머리로도 이해를 못 했는데 일이 즐거울 리가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것은 회사 내부 규정이나 업무 처리 시스템. 도대체 왜 이런 비합리적인 절차를 거치려 하는가, 왜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규칙이나 암묵적인 룰 ― 사실 규칙이 '암묵적'이라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 따위에 집착하는가, 그런 불만들이 떠오를 때.
거슬러 올라가면 이 반항심은 학창 시절부터 존재했다. 추운 겨울날, 자신은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학생들에게 교복 위에 다른 점퍼를 입었다고 소리치는 선생님이 한두 명 있지 않았는가. 사실 암묵적인 규칙을 인지하고 지키는 능력은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 더욱 극명했다. 학교에서는 친구 많고 목소리가 큰 아이가 무조건 지배자였다. 담임 선생님도 지배자였다. 학교의 운명이 교장에게 달렸다면, 교실의 운명은 담임에게 달렸다. 담임이 독재자라면 학생들은 독재국가의 불쌍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담임이 온화하더라도 시민 중에 양아치나 프락치나 반동분자가 있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아이들이 받아야 했다.
회사에서는 대표와 임원들이 정치인이므로 독재자를 만나거나 무능한 상사를 만나면 회사생활은 불행해진다. 내가 회사에 가면 마주치는 상사들을 떠올린다. 대체로 내 말은 듣지 않는다. 부하직원의 말은 무시해도 상관없으니까. 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주 떠넘긴다. 모두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한글과 엑셀은 젊은 사람들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을 활용해 작업을 하는 사람이 프로그램 활용법을 제대로 모른다거나, 그 이유로 작업을 부하 직원에게 밀어버리는 건 무능하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시스템이라고 하기에는 감정적인 부분이 다소 존재하지만, 회사 내부의 체계를 넓게 본다면 이 '떠넘기기'는 조직이 어딘가 뒤틀렸을 때 나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직무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일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이유는 역시 사람.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사가 있을 때, 혹은 나와 지나치게 맞지 않는 동료나 선후배가 있을 때는 회사를 사랑하기는커녕 매일 아침마다 무너지기를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워하는 글은 쓰면 쓸수록 미움이 더 깊어진다. 미워하는 마음은 미워하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한다. 정작 미움을 받는 사람들은 어쨌든 나보다 상사이고, 월급도 나보다 많이 받고, 나를 하대해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미움과 불만은 직접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면 다른 방향으로 분출하는 게 맞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각자 다르듯이. 이런 것들은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쓰고, 그다지 달갑지 않은 부분이다.
물론 나의 존재가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나의 비중은 그곳에서 결코 커지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 이쯤 되면 뭐 어쩌라는 건가 싶을 텐데, 어쨌든 현실은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나는 그러지를 못해서 정신이 영 건강하지 않다. ― 나는 그저 일개 직원 정도의 가치를 가졌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나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지금 이 회사와 나를 비교하면, 애석하게도 두 존재는 불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집단과 개인이니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이 지나치게 어긋나서 거의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춘 느낌에 가깝다. 괴로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입사한 지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회사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꾸 크고 작은 업무 실수를 반복하니 꾸중을 듣거나 못마땅한 눈길을 받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워낙 일머리가 없는 탓에 이 부분은 무어라 핑계를 대지도 못한다. 명백한 나의 문제라면 그건 내가 해결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어쩌면 이게 내가 그나마 직장 생활을 가장 잘 견뎌낼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일까. 섞여들지 못하는 우울감과 소외감은 점차 고립감으로 빠져든다. 그것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애사심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다. 어떻게 회사를 사랑할 수 있는지. 왜 직장을 사랑하는지. 일이 즐겁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면, 그렇다면 분명 큰 행운을 선사받은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일, 맞는 일터를 찾는 것 또한 크나큰 운인 것이다. 애사의 '사'가 '事'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취미를 업으로 삼아도 안 된다는데 흥미와 적성이 일치하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사실 '애사심'이라는 말은 평생직장에 충성하는 순진한 직원을 원했던 옛날 시대에나 좀 통했던 단어이고, 이 말을 요즘으로 번역하면 대충 '인내심'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내하고 다니는 것이다. 회사 내에 존재하는 모든 부조리한 일과 짜증 나는 상사들을, 상사에게 아부만 할 줄 아는 동료와 말귀 못 알아먹는 후배 ― 이건 아마도 나일 것이다. ― 와 사사건건 나를 건드리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들을 참고 억누르는 마음. 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위해, 미래를 위해, 안락한 삶을 위해, 참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랑은 세상을 살게 만드는 힘이고 삶의 보상이라지만,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내가 사랑해야 할 존재들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주면 된다. 사랑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붙들고 살면 어느 순간 나는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겠지. 끌어안고 있었어야 할 존재까지 모두 놓치고 허망하게 지나온 길만 돌아보겠지. 그 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어수선한 길은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왕 애사심이라면 회사(社)보다는 일(事)을 사랑하고, 이왕이면 역사(史)나 생각(思)이나 말(辭)까지도 아끼고 사랑한다면 더 좋겠다. 사사로운 것들에 얽매이는 대신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비중을 두고, 사랑해야 할 존재들에게 나의 마음을 나누어 주고 싶다. 하지만 퇴사하기 전까지 나는 계속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야겠지. 역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