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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Nov 06. 2021

육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왜인지 모르게 '작가'라는 타이틀에 끌렸다


2021년 10월 18일, 처음으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사실 브런치를 알게 된 건 기껏해야 몇 개월 전. 학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책이 마음에 들어 작가님의 다른 책을 구매했고, 그 책이 바로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었다. 그때만 해도 열아홉 살의 나는 브런치북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이제는 카카오에서 문학 공모전 같은 것도 주관하나, 그곳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을 책으로 만든 걸까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카카오 브런치북을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물 흐르듯 카카오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을 핸드폰에 다운로드하고 있었다.


그 전에도 계속 글을 쓰긴 했다. 보는 사람도 몇 명 없는 네이버 블로그와 나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한글 파일에 열심히 문장을 끄적거리는 게 전부였어도 감히 작가라는 꿈을 품었다. 경제적인 여건을 따지든 타고난 재능을 보든, 현실적으로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쓸데없이 이상주의자의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지라 작가라는 꿈을 원했다. 세상에 태어나 받은 이름 뒤에 작가라는 이름이 붙는 이들을 내심 동경했다. 이야기를 생각하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책을 출간한 분의 브런치 글을 보니, 역시 작가 낭만과 행복과 괴로움과 고통을 수반하는 이름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래서일까. 유독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이 끌렸다. 나 같은 사람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이상하게 그토록 매력적이었다. 브런치팀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사람만이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조건은 '나의 글을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과정'처럼 보였다. 좋든 싫든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메시지를 받는 순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제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구나. 그리고 드디어 브런치팀으로부터 나의 글을 인정받았구나! 두 가지 감정이 공존했다. 명예욕이나 과시욕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인정 욕구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본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나는 '육수'를 했다. 국물을 뜻하는 육수가 아니라 무려 6수를 거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처음 작가 신청을 할 때는 방향성도 없었고, 써둔 글도 많지 않았다. 블로그에 기록했던 글을 조금씩 다듬었을 뿐이었다. 지나치게 추상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글은 내가 봐도 그저 장황할 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짜여 있지 않은 글이었다.


아마 내가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 6번이나 도전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5번의 탈락―마땅한 표현이 없어 이렇게 쓴다―을 맛보면서 나의 불만은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소개가 미흡하다거나, 발행 계획이 명확하지 않다거나, 제출한 글에 수정 사항이 필요하다거나, 첨부한 SNS를 보니 브런치의 방향성과 거리가 있는 게시물이 있다거나. 이미 등록된 답변이라도 그런 사소한 피드백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브런치 발행 계획참고 자료로 올리는 3개의 글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올해 6월부터 10월 1일까지 꾸준히 썼던 블로그의 글은 퀄리티가 심히 떨어지긴 했으나 한 번도 수정한 적이 없고, 자기소개는 오히려 갈수록 점점 떠오르는 대로 키보드 자판을 누르게 되었다. 많게는 5개까지 쓰곤 했던 발행 계획을 2개로 줄이는 대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조금씩 계획을 만들어갔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고등학생 직장인의 삶과 고달픔.


내가 알기론 브런치를 이용하는 사람 중 나와 또래인 분은 상당히 적은 것으로 안다. 대부분 30대 혹은 40대, 특히 직장인의 글을 많이 읽는다. 직장에서 아픔과 상처를 겪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분들은 언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을까? 이분의 처음도 나처럼 아프고 혼란스러웠을까?


열아홉 살. 누구든 당연히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나이. 하지만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무언가 어마무시한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목적으로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3학년이 되어 식자재 유통대행업체인 모 중소기업의 현장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글을 쓰는 2021년 11월 6일을 기점으로 대략 2주 정도 되어 간다. 어제는 첫 월급―이라고 하기엔 10월 25일부터 일했던 5일 동안의 일당만 들어가 사실상 주급이지만―도 받았다.


돈은 삶을 유지하고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인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직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호락호락하게 본 것도 아니고 남의 돈 받고 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각오가 부족했던 걸까. 호흡하는 것조차 힘든 시간이 있었다. 할 일이 많아도 싫었지만 할 일이 없는 건 더욱 싫었다. 월급 루팡이 이토록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었던가.


고작 2주 동안 나는 사무실 한 자리에서 불안과 두려움과 무력감과 자괴감을 시시각각 느꼈다. 하루마다 일어나는 사건이 모두 달라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혹시나 '처음의 두려움' 앞에 서 계신 분이 있다면,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이라 해도 그 감정 하나만으로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감히 예측해본다.




블로그에 홀로 새겼던 글을 부드럽고 단단하게 다듬어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


한때 '하루에 글 하나 쓰기'라는 목표를 세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의외로 꽤 오래 지켜졌다.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5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한 개의 글을 발행했다. 비록 읽는 사람도 몇 명 없었지만 나의 인생 한 조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사실 김신지 작가님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기록'에 엄청난 열정이 불타오르는 시기이기도 했다.


막상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되려 글을 쓰기 싫어질 때가 많았다. 나는 틀에 박힌 계획을 싫어한다. 즉흥적이고 자유롭다는 포장지로 게으르다는 문장을 덮어버린다. 글이라는 건 유독 잘 써지는 느낌이 몰려올 때가 있는데, 그런 느낌이 손끝에 조금도 차오르지 않았을 때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되려 머리 아프고 싫증이 나더라. 그래서 계획을 조금 바꾸었다. 하루에 한 개의 글은 쓰지 못하더라도, 내가 쓰고 싶을 때 언제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자고. 브런치도 어쩌면 그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블로그에 쓴 글은 대부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간혹 지나치게 꾸민 글도 있고, 진심보다는 소망과 바람을 넣어 부풀려진 글도 있으며, 이리저리 떠돌며 떠들다가 뚝 끊기는 글도 적지 않다. 고작 몇 개월 전이지만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 나의 글을 차곡차곡 모아 조심스럽게 다듬고 싶었다. 조금 더 솔직하고, 담백하고, 진심이 담긴 '나의 글'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브런치 발행 계획을 작성했다.




언젠가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름 드물다면 드물지 않은가. 한국 나이로는 19세, 만 나이로는 18세인 상업 고등학생이 어느 중소기업의 현장실습생으로 살아가면서 작가를 꿈꾼다는 게.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고.


사실 10월 18일부터 11월 5일까지, 고작 19일 동안 무려 6수나 하면서도―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재신청을 한 경우가 많다.― 이렇다 할 노하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매 순간 진심을 담아서 썼지만 의외로 사람의 마음은 쉽게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구체적이지 못했던 계획과 마땅한 스토리가 없었던 참고 자료 글이 탈락의 원인이었으리라 추측할 뿐. 나를 브런치 작가로 만들어주는 카카오 브런치팀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진심을 읽을 테니, 차별적인 이야기에 눈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랐고, 도전을 했고, 기회를 얻었으니, 그만큼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쓰려고 한다. 미려한 글을 써야겠다는 욕심 따위는 없다. 예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그릇에 맞지도 않는 걸 억지로 삼키려다간 큰 탈이 난다는 걸 안다. 나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나의 글을 쓸 뿐이므로.


육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도 고된 하루 끝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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