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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Nov 07. 2021

삶의 끝자락, 마지막으로 남길 말

한 번쯤은 묘비명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이 있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삶이 흘러가는 시간은 한없이 무겁고, 느리고, 또한 너무 빨라서 지치기도 바쁜데. 어디에서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라도, 아직 매일을 인생 마지막 날처럼 사는 건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렇기에 나는 미리 유서 한 장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유서가 웬 말이냐며 놀라는 사람도 존재하리라. 다만 결단코 '죽으려는 준비'로 작성하는 글이 아님을 밝힌다. 그저 죽음 이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나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따금 타이핑하는 편지일 뿐이니까. 물론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 옆에서 임종을 지켜줄 사람이 존재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마 작년 겨울에 생각했을 것이다. 갑자기 내가 죽게 된다면,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자의 마음은 아무도 알지 못하겠구나. 생명을 잃은 나의 몸뚱어리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는 영혼만이 외롭게 떠돌아다니겠구나. 그래서 유서를 조금씩 쓰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홀연히 내가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이 내가 남기고 간 마음을, 말을,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나조차도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라 이곳에 내용을 밝히지는 못한다. 미래의 나에게 유서 내용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도 묻고 싶다. 이곳에서는 '삶의 끝자락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갈 말'에 대해 쓰려고 한다. 묘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봉안당에 안치된다면 내가 직접 쓴 묘비명을 그 안에 넣어달라는 내용도 추가해야겠다.


사실 발화점이 시작된지는 오래지만, 좀처럼 그럴듯한 말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남기고 떠날 말이라니. 고작 열아홉 살이라서 그런지, 원래 그런 쪽으로 생각이 풍부하지 못한 건지. 잘 살다 갑니다. 잘 놀다 갑니다. 간단한 말이라도 일생을 상징할 수 있는 문장을 찾고 싶었다. 특별할 것 없는 19년짜리 인생에서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하니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노래 하나를 들었다. 가사를 유심히 생각하고 곱씹었다. 아는 분도 계실까. '오마이걸'이라는 걸그룹의 멤버 '유아' 님께서 솔로로 발매하신 앨범의 수록곡. 왠지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은 <날 찾아서>라는 노래. 좋아하는 트로피칼 장르인 데다가 유아 님의 음색과 흡입력이 감탄스러운 노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수많은 장면과 이야기를 상상하는 나에게, 멋진 스포츠카―아마 평생 가지지 못할―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 광활한 도로를 달리는 그 짜릿한 감각과 시원한 바람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곡. 한 번쯤 들어보기를 추천드린다.




get in the car 도시의 빛을 뒤로해

그럼 이만 안녕히 get in the car

내 맘은 이미 california 빨간 차의 이방인

go so far 가능하면 여기서 조금 더 멀리

아무도 모르는 작은 해변까지

no one no one no one in there

no one 이제 거의 온 것 같아

멀리서 밤새 날 부르던 파도 소리

down in the deep

down in the deep

down in the down in 날 찾아서




날 찾아서 떠난다. 밤새 멀리에서 나를 부르던 어떤 파도 소리를 따라서. 익숙한 도시를 뒤로 하고, 화려한 불빛에서 점점 멀어지고, 아무도 모르는 작은 해변까지 떠나면서, 나를 찾는다.


마치 삶의 함축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삭막하고 지겹고 답답한 도시에서 지루한 일상에 지친 채, 나를 잊어버린 채 살다가 문득 깨닫는 것이다. 나의 마음속에 아무도 모르는 바다가 있다는 걸. 나만이 들을 수 있는 파도가 친다는 걸. 그 속에서 나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고 나만의 별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오직 나만이 아는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거쳐가는 모든 순간의 이유,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궁극적인 삶 자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목적지 따위는 없으니 나는 평생 세상을 돌아다닐 것이고, 어느 곳에 안주했더라도 그곳에서 끊임없이 많은 나를 만나고 나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주 길고 거대한 여행과도 같은 나의 인생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전혀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혹여나 이 글을 읽어주시는 감사한 분들께 짧게라도 유서를 한 번 써보는 게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그만큼 보잘것없이 소중한 인생에 나름대로 돌이켜보는 일이 많아진다. 인생에 '다음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죽음은 보이지 않을 뿐 항상 옆에 존재하니까. 나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으므로. 허무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소중한 나의 생을 하루라도 더 누리고 느끼기만 해도 숨 가쁜 세상인 것 같아서.


어떻게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이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자리에 당연하게 존재할 줄 알았던 무언가가 생을 잃고 숨을 멎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설령 '생명'이 없다고 해도 나에게는 살아있는 존재만큼 소중했던 또 다른 무언가든. 나는 한없이 무거운 죽음을 한없이 가볍게 생각하고 싶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목숨을 가진 나는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삶을 살고 싶다. 천국을 믿거나 사후세계가 있다고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죽더라도 그 이후의 나는 몸도 영혼도 완전히 자유롭게 사라지는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나'라는 존재를 품고 키워준 세상에 남기고 갈 마지막 말.


살아생전 찾지 못한 나를 만나기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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