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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Nov 11. 2021

그저 글을 쓰고픈 사람이었다.

문인이 될 수 없더라도


언제부터였을까.

막연하게 글을 향한 동경심을 품게 되었다.


계기는 참 사소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금요일 마지막 교시에 있던 국어 시간마다 책을 읽었던 게 시작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책'에 본격적인 흥미를 느꼈던 시기. 청소년 호러 단편소설집이었던 방미진 작가님의 <손톱이 자라날 때>가 무미건조하고 모든 게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를 '글의 세상'으로 밀었다. 나는 빠졌다. 풍덩. 수영도 못하는 몸으로 꼬르륵 가라앉았다.


원래 이런 거였나? 그래도 나름 책을 많이 읽으며 자랐는데, 같은 책인데도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르지? 누군가가 창작한 가상의 이야기가 이렇게 사람의 영혼을 강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거였나?


처음으로 심장이 뛰었다. 청소년 호러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했지만, 그렇기에 순식간에 흡수되었다. 으스스한 분위기, 차분한 문체, 기괴한 이야기, 당장이라도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흡입력과 묘사들이 나를 교실이 아닌 다른 곳에 데려다 놓았다. 그 책을 처음 접한 후 매일 금요일을 기다렸다. 그래야 마저 남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그때부터 '책'이라는 매개체와 '글'이라는 요소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 같다.


정돈된 상상력이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 그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글. 그 수많은 글을 담아내는 책. 처음 느낀 마음의 갈증은 욕심의 구덩이처럼 쉽게 나올 수 없었다. 한 번 빠지고 나니 떼어수 없는 몸이 되었다. 흔한 소설과 시와 수필에 빠졌다. 얼마 없는 돈으로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공부는 안 해도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께서 자식의 독서 생활을 반대하실리는 없었다.


온 세상 사람의 절반이 몸담고 있는 SNS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문장을 지어내는 바구니가 되었다. 책장을 채우기 시작한 책은 사소한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쓰는 글은 평생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되었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면 심장이 뛰기도 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이 책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손가락에 담아 책장을 넘겼다.




사실 장황하게 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인은 아니다. 글을 품에 끼고 사는 사람도 아니다. 단조로운 일상에 몇 글자를 수놓아 간직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집에 있을 때면 가끔 책을 읽고, 가끔 글을 쓰고, 가끔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브런치로 글을 읽는 게 전부다. 여느 작가 지망생처럼 듬성듬성 구멍 뚫린 소설과 에세이와 시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지만, 때로는 글 자체가 피로와 스트레스가 되어 생각을 구속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싶지만 읽는 게 힘들었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잘 쓰지를 못해 덮어버린 날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미 물밑까지 가라앉아서 놓을 수도 없는 것. 글이란 그런 존재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의 통로, 나뭇잎 하나에 실려오는 영감의 기록, 이따금 솟구치는 창작욕을 발산하는 행선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어차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글이란 건 한 사람의 인생과 같은 게 아니던가. 모두가 제각기 다른 별을 지니고 살듯이, 구태여 어떠한 틀에 맞출 필요도 없던 것이었다. 내가 쓰는 글은 그 자체로 이미 '나의 글'이 될 테니까.


욕심은 버릴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말을 이제는 조금 실천하려고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감성 가득한 글이든 일말의 기름기 없이 메마른 글이든.


그저 글을 쓰고픈 사람이었고,

성인도 되지 않은 채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나의 소박한 꿈이 아주 사소하게 이루어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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