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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Nov 14. 2021

추억은 입김이었다.

시간이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걸 알았다


아직 20년도 채 살지 못한 어린 사람에게도 추억은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일수록 향수가 짙어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만화가를 꿈꿨는데,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렸던 수많은 만화를 전부 버린 게 아직도 후회스럽다. 열아홉이 된 지금 며칠 동안 고심해서 겨우겨우 그려내는 만화보다 어렸을 때 순수한 즐거움으로 그려냈던 만화와 삐뚤빼뚤한 글씨가 백 배는 더 재미있을 텐데.


매일 저녁마다 고심 끝에 연필이 그어졌던 종이를 모두 모으면 웬만한 책 한 권 분량도 될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영영 찾을 수 없다는 게 새삼스럽게 아쉽다. 어머니께서도 이런 마음으로 초등학교 시절 꾸역꾸역 썼던 나와 형제들의 일기장도 버리지 않으셨던 걸까.




우리 집에는 사진 앨범이 없다. 사실 원래는 있었다. 하지만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는 사진은 몇 장 없다. 나와 형제들의 갓난아기 때와 어린 시절 사진, 부모님의 젊었을 때 사진과 결혼식 사진, 나의 작은 발을 찍은 점토도 모두 한때는 존재했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본 건 거의 12년 전이다.


경기도 모 도시에서 태어나고 토박이처럼 자란 나는 7살 때부터 8살 때까지 다른 지역에서 살았다. 이사를 갔던 곳은 아버지께서 직접 설계하시고 2년 동안 지어낸, 숲 하나를 지나면 주변에 인가도 몇 개 없는 한적한 산 부근에 위치한 집이었다. 드넓은 마당에 무려 3층이라는 높이를 자랑하는 전원주택. 산 기간은 1년 하고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여름마다 찾아오는 잠자리를 잡고, 어머니께서 따 주신 산딸기를 먹고, 여름철 거실 창가에 머무르던 무당벌레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2년도 살지 못한 채 우리 가족은 다시 원래 살던 도시로 돌아왔다. 자세한 사정은 정확히 모른다.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면서 집을 팔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얼추 들은 적이 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부모님은 이삿짐을 최대한 줄이셨고, 그 과정에서 앨범과 많은 사진은 그 집에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은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젊을 적 사진, 자식들의 어린 시절 사진, 한때 추억과 시절의 냄새가 담긴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아쉽게 여기신다. 지나간 순간을 담아낸 사진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를 동안 그 집에 찾아가 거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앨범과 사진과 물건을 가지고 올 기회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으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언젠가 돌아가겠지, 다음번 이사는 그곳이겠지 하다가 어영부영 타이밍을 놓치신 게 아닐까. 아니면 지금 당장을 살기도 벅찬데 굳이 먼 과거의 물건을 찾으러 갈 만큼의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에서 의상학과를 전공하신 어머니는 결혼하기 전 어느 옷가게에 근무하셨다. 옷을 고객에게 파는 작업보다는 마네킹에 직접 옷을 입혀서 진열하시거나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작업을 하셨는데, 25년이 흘렀지만 어머니는 이따금 그 시절을 그리워하신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적성에도 잘 맞았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잘한다고 말해줘서 즐거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옷가게에 근무하셨을 때까지 만들고 진열했던 옷들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걸 후회하신다.


후회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던가. 어머니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건 결코 아니다.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누구나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매 순간 숱한 후회를 겪으며 삶을 지나칠 테니까. 지극히 힘든 이 순간이 언젠가는 추억 중 하나의 조각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회사를 다니며 일하는 시간이 과연 그리워질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지나온 수많은 장면 중 일부에는 기억과 냄새가 새겨진다. 그것은 곧 추억이 된다. 수많은 시간을 모두 기억할 수 없어 머리가 아닌 마음에 새겨진 것들. 어떤 과거는 당시에는 무료할 만큼 별거 아니었거나 아니면 당장 벗어나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도, 일종의 '첫사랑 미화'처럼 나름대로 아름다웠던 시절로 그려지곤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은 입김 같다. 뱉을 때는 선명한 추위를 느낄 수 있지만 금세 허공으로 사라진다.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으니 남기고 싶어 한다. 사진으로, 글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어쩌면 지구 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사회적 동물로 발달한 먹이사슬 최상위권의 인간은 어떤 생물보다도 '보존의 욕구'를 가장 강력하게 품고 있는 생물이 아닐까. 그렇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자신의 시간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나의 삶이 일말의 기록 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건 슬프고 외로운 일이므로.


태어난 날로부터 하루가 지날수록 시간이 사라지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짐을 느낀다. 초등학교 시절의 6년, 중고등학교 시절의 6년, 성인이 되어서의 6년이 절대 같은 속도감을 가질 리가 없다. 어머니께서 내년이면 성인이 되는 나를 보며 태어났던 게 엊그제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약간의 과장이 들어갔겠지만 결코 거짓은 아니리라. 어른이 되어갈수록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간직할 수 있는 순간은 줄어든다. 그런 쓰라린 현실이 어른이라는 이름의 대가로 붙어버리는 게 씁쓸할 때가 있다.


추억은 입김이고 순간은 정말 순간이어서, 내가 살아가는 '지금'을 많이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현재의 원동력이고 현재는 미래의 원동력이 되니까. 굳이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이대로 소중할 테니까. 남기지 않아 후회하는 것만큼 마음이 허한 일도 없지 않을까. 이 밤에 조심스럽게 그런 문장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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