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게을러진다. 시간을 헤프게 쓰고 자꾸만 몸을 웅크리는 습관은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는데도 좀처럼 내 몸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벚꽃이 많이 피었다. 이번 주말에 아침 일찍 보러 갈 생각이다. 사람이 그나마 없는 거리를 거닐고 싶다.
전욱진 시인의 산문집 <선릉과 정릉>을 완독했다. 문득 제목의 뜻이 궁금해 검색해 보니,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왕과 왕후의 무덤을 뜻하는 말이었다. 선릉은 조선 성종과 성종의 계비(繼妃)인 정현 왕후의 능, 정릉은 성종의 아들인 정종의 능이었다. 이 제목의 시가 책 안에 있는데, 어째서 많은 시 중에서 이 시제가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 혹은 그 반대인지 ― 궁금해졌다. 시의 내용은 마음을 앓는 사람과 함께 걷고, 그가 오늘밤 죽을까봐 하루종일 붙어 있을 작정으로 걷고, 살려면 먹어야지 말하면서 식당을 찾고, 이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죽음이 있고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자는 말을 하며 천천히 되돌아가는 것.
박연준 시인의 도서 에세이 <듣는 사람>에 '시는 설명을 극도로 싫어하는 문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연 시는 읽을수록 그 말이 맞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는 어떠한 부가설명을 실컷 붙여도 결코 그 자체를 표현할 수는 없다. 하물며 그 시를 탄생시킨 작가라도 그렇다. 시는 쓰는 순간부터 이미 시인의 손을 떠나고 있다. 아무튼 책은 읽을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열심히 글을 쓰고 생각한다. 10년 후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불확실한 미래가 불현듯 궁금해지곤 했다. 아마도 이건 불안감이다. 좋아하는 일은 많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불분명한 방황이다. 그래서 오늘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도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