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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Apr 20. 2024

너무나 멀리 있는 세상

차별, 혐오, 배척, 핍박, 독재가 없는 세상을 바라며


어쩌면 천국은 결국
고작 이 층에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이 층까지 가기도
그토록 힘들다는 것을 생각한다.

- 황유원 著, <자음과모음 2023 겨울 59호 계간지> 수록 시 '에스컬레이터' 中 -


바로 어제인 2024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부정선거에 맞서 1960년에 전개된 민주화운동 '4.19 혁명'이 있었던 날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 단위 민주화운동으로, 독재 시대의 여느 시위가 그렇듯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민주화운동이다. 이후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을 하루 앞둔 어제,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솟구치는 일이 일어났다. 뉴스 보도로는 나오지 않은 사실이라 SNS에서 현장을 직접 찍은 영상과 목격담으로 알게 되었는데, 바로 혜화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소속 활동가들이 혜화역에서 탑승 시위를 벌이면서 지하철이 1시간 동안 무정차로 지나갔다는 소식은 이미 뉴스로 보도되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황당무계한 분노를 일으킨 문제는 역 안이 아닌 역 바깥에 있었다.


SNS에 올라온 영상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얼핏 보아도 족히 백 명은 될 법한 경찰들이 혜화역 입구 근처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혜화역 안에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과 경찰관들이 시위를 벌이는 전장연 활동가들과 대치하는 동안, 혜화역 입구에서는 경찰들이 그 어떤 장애인도 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시위를 목적으로 들어가려는 전장연 활동가들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한 지체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직접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서,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한 칸 씩 내리면서,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외치면서.


역 입구가 막힌 탓에 장애인뿐만 아닌 비장애인들의 출입도 어려운 상태였는데, 비장애인들은 경찰들의 확인 ― 비장애인이라는 확인 ― 을 받고 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체장애인과 노약자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그것은 지체장애인이 철저히 배제된 채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경찰과 교통공사의 통제에 따라서 말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잠시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머리로 가만히 생각했다. 이게 현실이라고? 진짜 일어난 일이라고? 어떠한 연출이나 대본으로 짜인 영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은 쪽에 더 가까웠으리라.




그래.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자.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수십 년 만에 경제 및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여 강대국 중 하나가 된 점은 자랑스럽게 여길 일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처럼 짧은 시간에 이토록 방대한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 하지만 그뿐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先進)하는 나라가 아니다.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외국인 혐오, 노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가 즐비하며 날이 갈수록 폐쇄적으로 변하는 나라를 어찌 '선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 철근 없이 지어진 건물이다. 땅이 한 번 흔들리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부실 공사 건물. 제대로 된 기반 없이 급하게 성장한 만큼 빠른 속도로 쇠퇴와 몰락을 맞이하고 있는 나라. 저녁을 먹을 때마다 온갖 정치 및 사회적 사건이 즐비하는 뉴스를 보면서 형제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가 얼마나 특정 집단을 배척하고 비난하고 핍박하는 데 혈안인지 확신을 가졌다.


뉴스에 보도된 내용은 오직 혜화역 안에서 전장연 활동가들이 침묵시위 중 갑작스럽게 탑승 시위를 벌였고, 이로 인해 역 안이 혼잡해지면서 지하철이 무정차 운행을 했다는 내용이다. 간추리자면 결국 소수의 '장애인' 때문에 다수의 '비장애인'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말이다. 수많은 경찰과 서울교통공사가 지체장애인의 역 출입을 막고 비장애인만 들여보냈다는 내용의 기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가가 공권력을 휘둘러 지체장애인 국민의 이동권, 더 나아가 생존권을 빼앗고 위협하는 일이 눈앞에서 버젓이 일어났는데도 말이다. 지체장애인은 전장연 소속 활동가일 수도 있으니 애초에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을까. 어째서 그들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들을 생각도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너는 장애인이라서 문제다'라는 말을 면전 앞에서 내뱉을 수 있었단 말인가.


혜화역 전장연 시위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았다. '저들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장애인이다.', '이래서 장애인들이 문제다.', '장애가 권리인 안다.', '진짜 장애인들은 저러지 않는다. 배부른 가짜 장애인들.', '이 정도면 장애인은 잠재적 테러범이다.' 등등. 바로 어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잠시 내가 사는 세상이 20세기에 멈춰 있나 생각했다.




물론 수많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통제해야 마땅하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어제만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주기적으로 뉴스에 보도되었다. 지하철이 무정차로 지나갔고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는지는 자세히 나왔던 적이 없다. 그저 전장연이 어느 역에서 시위를 벌였고 그래서 지하철이 몇 시간 동안 무정차로 지나갔는지, 장애인 시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얼마 정도인지, 뉴스는 그런 것들을 위주로 보도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이 아니거나 주변에 장애인이 없어 장애인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장애인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섣부른 불만이나 혐오가 일어나기 전에, 그들의 삶과 장애인이 배척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처지를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장애인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죄가 아니다. 일련의 사건이나 경험으로 인해 장애인을 향한 편견이 생기는 일도 있다. ― 가령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반에 발달 장애나 경계선 지능인 아이가 있으면 착하고 말 잘 듣는 다른 아이에게 '네가 잘 챙겨주라'며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담임 선생님들이 있었다. ― 하지만 비장애인보다 척박한 환경에 놓인 장애인의 입장을 헤아릴 생각도 없이 '이래서 장애인이 문제'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완전한 타종(他種)으로 여기고 비난하고 핍박하는 혐오자들의 마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은 평생 건강한 신체와 직장과 인간관계를 누리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막말이 나오는 걸까?


시위를 하는 장애인을 비난할 게 아니라, 장애인들이 기어코 '장애인도 시민이다'라고 외치며 모이게 만든 허술한 정책이나 지원 시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척박하고 부정적인 것도 상당히 큰 원인인데, 그 원인을 장애인 시위에서 찾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길거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아직 찔린 사람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훈방조치만 받고 풀려나는데, 어째서 화염병도 칼도 들지 않은 장애인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암덩어리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반드시 희생자가 나와야만 뒤늦게 움직이는 우리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희생자가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지나치는 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만 아니면 돼. 내 일 아니면 상관없어.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로 돌진하는 그 말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서바이벌 게임으로 만들고 있다. 운 좋으면 사는 것이고, 운 나쁘면 칼에 찔리거나 맞아서 죽는 것이다. 내가 죽을지, 내 가족이 죽을지 내 친구나 연인이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토록 삭막하고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란 말일까 싶다. 우리가 잘못 살아간 대가를 아이들이 물려받아야 하는 억울한 대물림은 어디서부터 끊어낼 수 있을까? 바꿀 수 있는 세상은 바꿔나가야 한다. 어떤 단체나 기관에 일임하는 게 아니라 당장 나부터 변해야 사회도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변할 수 있다. 변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고 고칠 수 있기에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사회주의자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가톨릭교도를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가톨릭교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마르틴 니묄러 著,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


독일의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였던 마르틴 니묄러 ― 반공주의자였던 그는 처음에는 히틀러를 지지했으나 점차 반나치 운동가가 되어 추후에는 강제 수용소에도 수감되었다. ­― 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금언 혹은 시다. 정확한 원문이 없고 각색된 인용문도 많아서 나 또한 명확하게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워낙 유명한 글이기에 다른 곳에서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침묵할수록 칼날은 점점 가까워진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우리의 권리, 사회의 질서와 평화와 공생은 무너진다. 처음에는 내 일이 아니니까 상관없다며 외면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나의 목을 향하고 있을 테지만 그때 가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무고한 시민들이 국가와 공권력에 의해 고문과 억압에 짓눌리고, 처참히 죽어갔던 역사를 수없이 겪었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침묵은 무섭다.


인권 운동가는 될 필요 없다. 나 역시도 인권 보호 활동에 힘쓰는 사람이 아니다. ­― 나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입장이기에 오히려 인권 운동가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것에도 여러 고민과 생각이 존재하지만. ―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의 삶과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니다. 평화로운 사회에 관심이 없더라도 자기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내버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내가 장애인이 될 수 있으니까,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오만하고 불손한 마음을 자각하는 순간 몰려오는 자멸감이 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대규모도 아닌 장애인 시위에 그토록 많은 경찰 인력이 동원되었는지, 그 뒤에 어떠한 정치적 사유나 특정 이유가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누구든 함부로 타인을 비난하고 핍박하고 혐오하는 발언은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만 더 생각한다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차별, 혐오, 배척, 핍박, 독재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아주 큰 업적이다.


서문으로 인용한 황유원 시인의 시처럼 천국, 거창할 것도 없이 그저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은 결코 멀지 않다. 그것을 아주 먼 세상으로 만드는 존재는 부패한 정치인과 더불어 그들에게 적당히 순응하며 입을 닫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고 타인을 배척하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무너진다면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거대한 균열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세상, 고작 층에 있는 세상이 부디 지금보다 아름답고 평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장애인들의 생존권이 당연하게 보장되는 사회는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코로나, N번방… 연일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지녀야 할 건 역시 사랑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의 마음.

- 명업식 著, <길 위에서 쓰는 편지> '2020년 3월 25일 두 번째 손님의 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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