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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Mar 27. 2024

율리아

투데이신문 2024 직장인신춘문예 공모전 출품작 - 단편소설


그 사람은 눈이 오는 날마다 밖으로 나가 길을 걸었다. 그 사람, 눈이 올 때마다 산책을 가장한 방황을 일삼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날씨가 추운 겨울이면 항상 격자무늬의 남색 목도리를 두른 채 외출하므로 남색 목도리라고 칭하겠다. 남색 목도리는 아침 일찍부터 글을 썼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지도 않고, 눈을 뜨고 아침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양치와 세수를 끝낸 후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하지만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한참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다가 이내 깜빡이는 커서를 눈앞에 두고 이마를 짚었다. 눈이 피로할 만큼 밝은 화면이 거슬렸으나 밝기를 낮추면 도무지 글자가 보이지 않아서, 남색 목도리는 항상 노트북 밝기를 최상으로 유지한 채 화면이 누레지는 야간 모드를 켰다. 그렇지만 눈동자가 뻑뻑하고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다. 노트북 우측 하단을 힐끔 보니 벌써 처음 노트북을 켠 시간에서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집중력은 이미 떠났다. 혼이 나간 글은 어떤 문장도 읽을 수 없다. 남색 목도리는 한숨을 내쉬고는 책상 옆 창문을 가린 커튼을 젖혀 보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일기예보에 눈이 내린다고 했지. 소리 없이 커다랗고 굵은 눈송이가 와르르 쏟아지는 걸 보니 참을 수가 없어졌다. 이런 날씨에 길거리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건 흐리고 허연 하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남색 목도리는 보온성이 높은 회색 바지와 안쪽에 털이 있는 고동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겨울용 양말을 신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남색 목도리를 두르고 건조한 입술에 립밤을 바르면 외출 준비는 끝이었다.


남색 목도리는 작은 우산을 쓰고 걸었다. 대로변에는 사람보다 차가 더 많았다. 뜨거운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자동차들은 새하얀 눈이 질척하게 잿빛으로 녹아 땟물이 된 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도로가 미끄러운 날에도 저들은 좀처럼 느려질 생각이 없었다. 차를 타고 시동을 걸고 핸들만 잡으면 더 빠르게 달리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운전면허가 없는 남색 목도리는 운전할 때마다 과격해지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으니 평생 뚜벅이로 살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운전면허가 있고 차가 있어 봤자 조수석에 태우고 다닐 사람도 없었다. 언젠가 정신을 차리면 운전석을 제외한 모든 좌석에는 출처도 모르는 짐만 쌓이겠지. 그렇게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꼴을 차 안에서까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색 목도리는 열심히 두 다리로 걸었다. 아직은 건재한 두 다리. 언제 갑자기 무너지고 망가질지 모르는 다리로, 아직 발자국이 남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뭉친 눈을 힘주어 밟았다. 뽀드득 소리가 나면서 발바닥 밑에서 눈송이가 압축되는 느낌을 받으면 어린 시절처럼 웃었다. 누가 보면 철이 없는 어른이라며 혀를 찰 모습이었다. 순진한 만큼 끓는점이 낮아서 쉽게 기뻐하고 쉽게 흥분했던 시절을 잊어버리는 것만큼 슬프고 먹먹한 일은 없는데도.


남색 목도리는 중학생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에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문장력이나 호소력을 타고나지도 못했다. 잘 쓰지 못했으니 학교에서 열리는 작은 문예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없었다. 소설을 못 쓰니까 그나마 간단한 시라도 써볼까 했지만, 시는 그저 소설에 비해 글자 수가 적을 뿐 전혀 간단하지 않았고 그마저도 재능 없었던 남색 목도리는 자신의 한계를 일찍 깨달았다. 돈도 못 벌고 잘하지도 못하는 글에 열정과 시간을 쏟아붓는 대신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수험 공부에 전념했다. 꿈을 포기한 후 시험과 입시에 집중한 결과로 남색 목도리는 인서울 명문대도 지방 삼류대도 아닌 어느 평범한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딱히 흥미 없는 분야였기에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로 적성에 안 맞는 학문도 아니었다. 인류 역사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발명된 지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남색 목도리는 복지(福祉)가 필요한 자신이 사회 복지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쌓으며 타인을 구제해야 한다는 현실이 꿈처럼 몽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읽지 않고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 아무런 비판도 칭찬도 받지 못하는 혼자만의 문장을 켜켜이 쌓아가며 무의미한 시간을 죽였다.


남색 목도리는 스물한 살 때 율리아를 만났다. 율리아는 한국인이다. 부모님도 모두 토종 한국인이며 율리아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율리아를 율리아라고 부르는 건 남색 목도리밖에 없었다. 모두가 율리아를 한국식 본명으로 불렀다. 남색 목도리도 아는 사람이 여럿 있는 곳에서는 율리아를 본명으로 불렀지만, 그 외에 단둘이 있는 장소에서는 항상 율리아라고 칭했다. 어째서 율리아의 본명과 한 글자도 같지 않은 생뚱맞은 이름이 남색 목도리만의 애칭 겸 통칭이 되었느냐면, 율리아가 자신의 인생 영화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꼽았기 때문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원작 희곡은 한 번도 읽지 않았으므로 남색 목도리와 율리아 사이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직 영화였다. 남색 목도리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율리아에게 물었다. 올리비아 허시가 나오는 거야,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거야? 율리아는 두 영화 모두 보았다며 꺄르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율리아의 웃음은 확실히 남달랐다. 해사하고 말간 웃음과 거슬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 남색 목도리는 두 영화를 모두 본 적이 없었고 그저 출연하는 배우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율리아를 따라 웃었다. 제 웃음은 율리아만큼 환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이 언제나 아쉬웠다. 그럼 네 이름은 앞으로 로미오라고 할까? 그랬더니 율리아는 로미오라는 이름은 느끼한 바람둥이 같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줄리엣으로 해야겠네. 율리아는 또 고개를 내저었다. 줄리엣은 낭만적으로 광고하는 브랜드 초콜릿 같아서 별로. 신기한 비유였다.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아 남색 목도리의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그럼 율리아로 하자. 줄리엣이 독일이나 우크라이나로 가면 율리아가 된대. 윌리엄이 어느 나라에서는 빌헬름이 되고, 빈센트가 뱅상이 되고, 클라라가 키아라로 변하는 것처럼……. 그러자 율리아는 좋다고 했다. 일 년 내내 새하얀 눈이 내리는 마을에서 사는 소녀가 떠오르는 이름이라며 마음이 든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남색 목도리는 고작 율리아라는 호칭 하나에도 눈처럼 뽀얗게 웃을 줄 알았던 율리아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리며 잠들곤 했다. 그런 날이 적어도 수십 번은 넘었다. 떠올리고 떠올려도 절대 질리지 않는 눈동자와 목소리, 특유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활동적으로 움직이던 두 손. 변화가 다양한 표정과 감정적이되 충동적이지는 않았던 성격까지. 남색 목도리는 하얀 눈이 내릴 때마다 율리아가 생각났고, 그래서 겨울은 보이지 않는 율리아와 함께하는 혼자만의 쓸쓸한 계절이었다.


남색 목도리는 석 달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율리아가 떠나고 일 년이 지난 시기였다. 율리아가 떠나갔을 때 남색 목도리는 오히려 회사에 열정적이었다. 남들보다 최소 삼십 분은 일찍 퇴근해서 그만큼 늦게 퇴근했고, 예전에는 맡으려 하지 않았던 귀찮고 번거로운 업무를 굳이 자처했으며, 한 번만 확인하면 될 문서를 굳이 세 번이나 확인해서 자잘한 오타나 행간과 자간의 미세한 차이까지도 잡아내어 수정했다. 회사에 출근한 남색 목도리는 모니터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목을 쭉 빼내어 허리와 어깨를 둥글게 말았다. 당장이라도 컴퓨터 모니터 안에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사람처럼. 바쁜 업무는 율리아에 대한 생각을 잊게 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뒤숭숭할 땐 공공의 책임감이 부여되는 쓸데없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적어도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잠시 잊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사회적 가면을 쓰고 흥미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웃기지도 않은 말에 호탕하게 웃으면서 스스로를 속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시간을 죽일 수 있었으니, 회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무직이 아니라 현장직이나 생산직이었다면 효과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종일 몸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면서 시간 감각도 잊어버린 채로 주름진 뇌를 눈밭처럼 새하얗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느 날, 남색 목도리는 모든 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면 제 마음이 너무 박약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다섯 번 두드렸을 때 깨지는 정신력이 고작 두어 번 만에 깨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럭저럭 견고하게 잘 버티는 줄 알았던 마음이 보란 듯이 와르르 무너지고 나서야 황폐하게 메마른 정신 상태를 겨우 목도했다. 그토록 하지 못해 안달이었던 온갖 업무와 문서 정리는 남색 목도리의 머릿속에서 깃털처럼 훨훨 떠나갔다. 완전한 무기력과 침잠하는 우울감. 문제를 깨달은 직후 남색 목도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요즘 세상에 우울증이나 번아웃 증후군이나 공황장애 정도야 감기처럼 흔한 병이라고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감기만큼 익숙하지 않다는 건 남색 목도리도 알았다. 감기보다 전염성이 적은 정신 질환이지만 사람들은 피부가 스치기라도 하면 마치 우울증이나 번아웃 증후군이나 공황장애가 삽시간에 감염되는 것처럼 슬금슬금 피해 갔다. 또는 불쌍하거나 안타깝다면서 서두를 끊고는 그래도 우리는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그래도 저 사람처럼 고장 나지는 않을 거라는 자신감과 동질감에 둘러싸여 열심히 숙덕거렸다. 무리에서 조금이라도 도태되면 금세 소외되고 배척당하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서로 어울리기 위해 애를 썼다. 남색 목도리는 그걸 비겁한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다. 일종의 선민의식에 가까운 마음을 비난할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남색 목도리도 언젠가는 그런 무리에 속해 있던 사람이었고, 우리는 저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위안의 말이 사실은 우리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를 자꾸만 되뇌는, 자기 최면에 가까운 방어기제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인간은 이성적이기에 간사하고 지성이 존재하기에 모순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존재였으니 남색 목도리는 모든 걸 편안하게 뒤로한 채 떠날 수 있었다.


당분간은 수입이 없을 테니 그동안 모아둔 적금으로 근근이 먹고살아야 했다. 여느 때처럼 돈을 좀 빌려줄 수 없냐는 어머니의 문자에는 간결하게 답장했다. 나 이제 회사 안 다녀. 나도 돈이 없어서 앞으로는 못 빌려드려요. 곧장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이토록 아름답고 초라하고 드넓은 세상을 등지고는 아무도 모르는, 아주 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밀려왔다. 저와 조금이라도 연결된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모든 자극과 쾌감을 뇌에서 영영 지워버리고, 욕심도 욕망도 전부 구덩이 속에 묻어버린 채 돈도 거처도 없이 방랑하고 떠돌아다니면서……. 그러다가 그 모습이 역전에서 엎드려 구걸하는 노숙자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고는 상상만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된다면 남색 목도리의 남색 목도리는 단순한 보온용품이 아니라 매서운 추위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목숨줄이 될 것이었다.


눈길에 살짝 비스듬한 발자국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았다. 그 빈자리는 다시 커다란 결정을 가진 눈송이로 서서히 태워졌다. 차디찬 칼바람에 외투 모자를 뒤집어쓴 남색 목도리는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 사이로 율리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어느 따스한 봄날에 함께 길을 걷던 도중 율리아는 벤치에 누워 잠든 노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온이 부쩍 오르고 구름 없이 햇볕이 내리쬐어 제법 덥게 느껴지는 날씨였는데도 그는 보온용 바지에 검은 바람막이를 두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으나 가끔 두세 명 정도의 일행이 지나가면 그를 힐긋 바라보고는 키득키득 웃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던 율리아가 말했다.



사람들은 남한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남색 목도리는 긴 공백 없이 대답했다.



“요즘엔 개인주의라서 남한테 관심 없을 텐데.”



그러자 율리아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남색 목도리는 그 미소가 호감 또는 동의의 표시라고 생각했었으나, 그게 아니었음을 너무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그건 자기가 참견했을 때 손해 볼 것 같은 일에만 그런 거지.”


“그런가?”


“그럼. 길거리에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다고 치자. 그냥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는 몰라. 그러면 과연 몇 번째 사람이 그 사람한테 다가가서 의식을 확인하거나 구급대에 신고할까?”


“글쎄. 대부분 지나칠 것 같은데.”


“너라도 그러겠어?”


“아무래도 세상이 흉흉하니까. 갑자기 일어나서 나한테 칼이라도 휘두르면 어떡해. 괜히 도와줬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고…….”


“맞아. 그건 당연한 본능이야. 누구든 남보다 자기를 먼저 감싸고 보호하려고 하니까. 그런데 요즘엔 너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관심을 가져야 할 일에는 자기 일 아니라면서 무시하고, 관심 가지지 않아도 될 일에는 유난스러워. 왜 그러는 걸까?”



남색 목도리는 그런 말을 유려하게 내뱉던 율리아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는 걸 기억했다. 이렇다 할 감정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어쩐지 여느 때보다 불쑥 단단하고 예리하게 느껴지던 목소리를 한참 곱씹었다.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추측하건대, 남색 목도리는 그즈음 율리아가 세상의 극단적인 냉담과 과열 사이에서 지쳐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차가운 무관심이 팽배하고 지나치게 과도한 관심이 들끓는 간극에 적응하지 못해서 이내 염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다만 율리아는 그걸 겉으로 티 내지 않았고 남색 목도리 또한 율리아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속마음을 낱낱이 파헤치지는 못하더라도 내면을 알지 못한다면, 사실상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거였다. 남색 목도리는 그런 깨달음이 저에게 너무 늦게 찾아왔음을 원망했다. 신이나 운명을 탓하거나 율리아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남색 목도리는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사람들은 왜 훗날 자기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고독사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는 걸까. 마치 자신의 미래가 온전히 제 손에 달린 것처럼. 혹은 그렇게 믿으며 자부하고 싶은 것처럼. 율리아의 말이 생각나면 남색 목도리는 찬 방바닥에서 홀로 조용히 죽어가는 제 낡은 육체를 상상했다.


남색 목도리는 율리아가 떠나고 나서야 율리아가 바라던 게 무엇이었을지 종종 혼자서 생각했다. 어딜 가든 들려오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이야기, 재산이나 성공을 빌미로 한 속이 빈 감언이설은 율리아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율리아는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도 냉담과 과열이 균형을 이루는 세상을 바랐으리라. 율리아가 심각하지 않은 목소리로 농담처럼 말하던 말들이 아직도 남색 목도리의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어. 빈부격차나 무전유죄나 유전무죄 같은 것들, 권력이 사람을 망치고 차별과 핍박이 난무하고 낡은 대물림이 사회를 망치는 일은……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계속되겠지. 그날 남색 목도리는 율리아의 반듯한 옆모습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어떤 말을 해도 율리아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남색 목도리는 느리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송이에 실린 율리아를 생각했다. 웃을 때면 도드라지게 휘어지던 눈꼬리, 추운 날씨마다 신었던 갈색 어그부츠, 말수가 줄어들면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던 소리, 이따금 하늘을 바라보던 그윽한 눈빛,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던 이의 구슬픈 눈동자, 따뜻한 손바닥과 부드러운 볼, 누군가는 쉽게 지나치는 장면에 집요하게 몰입하던 고집스러운 시선, 첨예하지만 상냥했던 생각과 특이한 상상,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질리지 않았던 목소리, 그것을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 느꼈던, 간지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릿한 통증이 있었던, 그 생경하고 시원한 기분까지도. 혼자 외로운 싸움을 반복하다가 지친 사람처럼 체념한 숨으로 그런 말을 토해내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다시 웃었던 율리아.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 바꿀 수는 있어. 변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다 보면 세상도 어느 순간 변해 있는 거야. 희망을 놓는 순간 우리의 미래는 영원히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거라고 말했던 율리아.


눈이 올 때마다 모든 더러운 것들이 새하얗게 뒤덮인 세상을 걸으며 율리아가 남은 기억 파편을 더듬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토록 율리아가 남기고 간 흔적이 흘러넘칠 정도로 많았다. 율리아는 떠나가던 날에도 맑은 눈동자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남색 목도리는 그 말을 오랫동안 잊었다가 더 오랫동안 기억하며 살았다. 회사에서 공허한 눈동자로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던 때, 아무 감흥 없는 농담에 와락 웃었을 때, 상사에게 반박할 말을 마음속으로 삼켰을 때,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길가에 침을 뱉는 이들이 문득 불 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순간에도. 남색 목도리는 율리아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조용히 떠나겠다는 율리아를 조용히 보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남색 목도리는 율리아를 떠올리며 글을 썼다. 자신의 세상 한 조각이 사라진 이후 비로소 그동안 버려왔던 또 다른 세상을 주워 담을 수 있었다. 여전히 떠오르는 문장이나 인상적인 감상 따위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남색 목도리는 걸었다.


하얀 눈길을 걸었다. 희미한 발자국 하나에 율리아를 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문장을 율리아의 목소리로 읽었다. 차가운 세상과 따뜻한 눈빛과 사랑한다는 말 하나를 남기고 무정하게 떠나간 율리아를 추운 겨울마다 기억했다. 밝은 회색빛 하늘에서 여전히 눈이 사그락사그락 내렸다. 남색 목도리의 머리카락 끝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빠르게 녹아 사라졌다. 긴 숨을 내뱉었다. 영혼처럼 입김이 모락모락 피었다. 남색 목도리는 자신의 숨 끝에서, 미약한 호흡 너머로 율리아의 옅은 입김을 보았다. 언젠가 잊어버릴 진득한 마음의 잔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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