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야사 Mar 20. 2024

사람, 감정, 세상이란 무엇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괴물(怪物)> [영화]


- 제목 : 괴물(怪物)

-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 제작사 : 도호, GAGA, 후지 테레비, AOI Pro., 분부쿠




2023년 11월 말에 개봉한 영화를 2024년 3월 16일이 되어서야 보았다. 이미 대형 영화관에서는 상영이 모두 종료된 상태였기에, 인터넷으로 예매한 후 카페와 독립서점과 전시회 갤러리를 겸하는 복합문화센터의 작은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모든 좌석을 합해도 스무 석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규모였다. 그래서 크고 넓은 대형 영화관보다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개봉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일본 감독이 제작한 일본 영화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인지도와 팬이 있는 감독이기에 이 작품도 제법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이미 상당한 스포일러를 이곳저곳에서 접하며 영화의 줄거리, 영화에 담긴 메시지, 연출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 탓에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신선함이나 충격은 덜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글은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와 결말을 모조리 포함하고 있다. 온갖 스포일러가 가득하다. 아직 시청하지 않은 분이 계신다면 영화관이나 플랫폼 사이트에서 영화를 먼저 시청하시길 추천드린다.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이 영화는 내용과 의미를 알고 볼 때와 아무것도 모르고 볼 때의 차이가 굉장한 작품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시청하지 못해서 아쉽다.





영화의 줄거리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무기노 미나토'의 엄마이자 작품의 주인공 중 하나인 '사오리'의 시점이다. 사오리는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던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혼자서 아들 미나토를 키우는 싱글맘인데, 비록 혼자이긴 하지만 일과 가정 중 어느 쪽에서 소홀하지 않으며 항상 최선을 다해 초등학생인 아들을 돌보며 사이도 좋다. 집 근처 빌딩에 화재가 발생한 장면을 보던 미나토는 엄마 사오리에게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뭘까? 인간일까, 돼지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사오리는 "요즘 학교에서는 이상한 걸 가르치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이 화재 장면과 대화는 영화의 중요한 복선이다.


어느 날 사오리는 평범했던 미나토가 이상해졌음을 느낀다. 난데없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운동화 한 짝이 없어져 있거나 물통 안에서 진흙이 나오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이어진 것이다. 미나토는 그때마다 곱슬머리가 교칙 위반이라거나 과학 실험 때문에 물통에 흙을 넣었다고 설명하지만 사오리는 미심쩍은 기분을 지우지 못한다. 그리고 미나토가 연락 없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사오리는 미나토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나토가 자전거를 탄 채 어딘가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차를 끌고 그곳까지 달려간 사오리는 웬 캄캄한 폐터널 안에서 혼자 "괴물은 누구게?"를 외치는 미나토를 발견한다. 게다가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갑자기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등 돌발적이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미나토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다. ― 다만 사오리는 미나토가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려 타박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왜 그랬냐며 추궁하기보다는 미나토를 안심시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미나토를 크게 타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게 미나토가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회피하는 것인지 미나토를 배려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사오리가 성숙한 어머니 같다고 생각했다. ―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나토가 "내 뇌는 돼지 뇌인 거야!"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자 사오리는 누가 그런 말을 했냐며 미나토를 붙잡고, 미나토는 담임인 '호리 선생님'이 그랬다고 대답한다. 폭언뿐만 아니라 호리 선생님이 귀를 잡아당기거나 팔을 비트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는 미나토의 말에 사오리는 그 일에 대한 규명과 해명을 듣기 위해 학교로 향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딱딱하고 건조한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호리 선생은 그저 지도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명확한 설명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한다. 더군다나 호리 선생은 사오리의 눈을 피하고 말을 웅얼거리거나 사탕을 꺼내 먹는 등,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의 태도라고는 볼 수 없는 무례하고 무신경한 태도로 사오리를 분노하게 만들고, 갑자기 "무기노는 '호시카와 요리'라는 동급생을 괴롭힌다. 방에 나이프나 흉기가 없는지 잘 살펴라."라고 말하면서 "걸스 바에 다니는 교사 주제에, 당신이 빌딩에 불을 지른 것 아니냐"는 사오리의 비난까지 받는다. ― 호리는 '걸스 바'라고 불리는 유흥업소에 갔다는 소문이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돌고 있었다. ―


다만 호리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사오리는 미나토의 방에서 토치 라이터를 발견하면서 미나토를 의심하고, 정말 미나토가 호시카와 요리라는 아이를 괴롭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요리의 집을 찾아간다. 요리는 밝고 예의가 바른 아이였는데, 팔뚝에 불에 그을린 듯한 화상 자국이 있었고 사오리가 요리에게 혹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냐고 묻자 표정이 굳은 요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다음 날 교장실에서 증언을 할 때도 "무기노 미나토는 저를 괴롭힌 적이 없고, 호리 선생님이 무기노를 때렸으며 아이들이 모두 호리 선생님을 무서워한다"라고 말하여 사실상 호리의 폭언 및 폭력 행위를 입증한다. 결국 호리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사과하며 교직에서 물러나는 결말을 맞이한다.




여기까지 보면 나름대로 사건이 잘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두 번째 파트인 '호리 미치토시'의 시점이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진다. 사실 호리는 미나토에게 악의적인 폭언이나 폭행을 행사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도 하고 잘 어울리는 등 친절하고 평범한 선생님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이다. 호리는 교실에서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피우는 미나토를 제지하다가 실수로 팔로 코를 친 것 외에는 미나토를 때린 적이 전혀 없고, 오히려 편모 가정에서 과보호 받는 아이들이 유난이라는 여자친구 말에 자신도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며 '날카롭게 보는 것을 잘못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며 미나토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호리 선생님이 유흥업소에 갔다는 소문이 돈 이유 또한 빌딩에서 화재가 나면서 빌딩 안에 있던 걸스 바 직원들이 모두 거리로 대피하고, 여자친구와 그 근처에 있던 호리 선생님을 불량하고 무례한 학생들이 보고는 "호리 선생님 유흥업소에 다녀왔나 봐!"라고 말한 게 시초였다. 참고로 이 학생들은 호리가 담당하는 반 학생들인데, 요리를 주도적으로 괴롭히며 미나토에게도 요리를 괴롭히라고 종용하는 전형적인 학교폭력 가해자 집단이다.


호리는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서 일을 벌이지 말라는 압박을 받는다. 당연히 잘못을 저지른 적 없는 호리는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고 해명하겠다고 말하지만 끝내 의견은 묻혀버리고, 사과문을 달달 외워서 사오리에게 사과하는 지경에 이른다. ­― 다만 아직도 호리가 사오리 앞에서 왜 갑자기 사탕을 꺼내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긴장하면 사탕을 먹는 버릇이라도 있었나. ― 이때 교장은 사오리가 앉을 학부모석에서 자신과 죽은 손녀가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가 잘 보이는지 체크하는데, 호리는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부도덕한 교사는 호리가 아니라 되레 교장과 주변 학교 관계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호리의 시점에서 미나토가 말한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의 출처가 밝혀진다. 요리의 운동화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걸 발견하거나 화장실에 갇힌 요리를 꺼내주면서 요리가 동급생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호리는 요리의 부모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집에 방문하는데, 술에 취한 채 나타난 요리의 아버지는 호리에게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묻거나 자신이 예전에 큰 부동산 회사에 다녔고, 별로 대단할 건 없지만 교사 눈에는 대단해 보일 거라고 말하며 초면부터 호리를 업신여기는 말을 한다. 게다가 그는 요리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왔다는 호리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아들이 골칫덩어리인 건 나도 안다. 내가 잘 가르칠 것이다."라고 말하더니, 요리가 괴물이고 돼지 뇌를 가지고 있어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정상적인 부모에게서는 나오지 못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학생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불량 교사가 되어 교직에서 해임된 호리는 기자가 찾아와 자신을 취재하거나, 그로 인해 여자친구에게서 이별을 당하자 ― 호리 시점 초반에서 여자친구는 "남자의 '괜찮다'라는 말과 여자의 '다음에 봐'라는 말은 믿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데, 호리의 집에서 짐을 싸들고 나갈 때 "나중에 연락할게."라고 말한다. ― 미나토를 찾아 학교로 향한다. 미나토를 붙잡고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나는 너에게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울분을 토하던 호리는 이내 현실을 비관하여 투신할 생각으로 학교 건물 지붕에 올라가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커다란 뱃고동 혹은 고래 울음 같은 소리에 미묘하게 빠져드나 싶더니 이내 몸을 던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며칠 후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학생들의 장래희망 글짓기 과제를 첨삭하던 호리는 우연히 요리가 쓴 글이 '무기노미나토호시카와요리'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챈다. 이를 통해 미나토와 요리가 학교폭력 가해자,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깨달은 호리는 비를 맞으며 미나토의 집 앞에서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자신이 의심했던 사실을 사과한다. 하지만 미나토는 집에 없었고, 사오리와 함께 미나토를 찾으러 간다. 사오리는 미나토가 그때 그 폐터널에 있을 것이라 확신하여 호리와 함께 향하지만 그곳은 산사태가 일어나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고, 막무가내로 뛰어가는 사오리를 따라 호리도 그 안으로 들어간다.


사오리와 호리는 미나토의 이름을 외치며 옆으로 쓰러진 폐기차 위로 올라간다. 창문을 열고 엉망이 되어버린 기차 내부를 들여다보며 미나토의 이름을 외치지만, 아이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세 번째 파트인 미나토의 시점으로 옮겨진다. 미나토는 같은 반 남학생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항상 해사하고 밝은 모습을 보이는 요리와 친구이다. 하지만 요리와 단둘이 호리 선생의 심부름으로 준비실에서 악기를 정리할 때, 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올해도 친구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요리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내 다른 애들 앞에서는 말을 걸지 말라고 말한 미나토는 요리가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내내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고는 집으로 돌아와 요리가 쓰다듬은 머리카락을 가위로 서슴없이 잘라낸다.


호리 시점에서 갑자기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던 미나토는, 사실 요리를 괴롭히는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괴롭힘을 멈추기 위해 일부러 분노를 표출하면서 그런 행동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후 미나토가 하굣길에 신발을 도둑맞아 맨발로 귀가하는 요리에게 운동화 한 짝을 빌려주고 아까 일은 미안했다고 사과하면서 화해한 두 아이는 함께 폐터널을 지나 버려진 기차를 발견하고는 그곳을 아지트로 삼아 내부를 꾸미고, 단둘이 놀고 게임을 하면서 여느 아이들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미나토의 시점에서 영화에 여러 번 등장했던 빌딩의 화재가 요리의 방화라는 사실 ―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 이 밝혀지는데, 산에서 죽은 고양이 시체를 발견하고 불태우던 것을 근처 도랑에서 퍼온 물로 끈 미나토가 요리에게 "네가 빌딩에 불을 지른 거야? 아빠가 걸스 바에서 술을 마시니까?"라고 묻는다. 요리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지만 술을 마시는 건 몸에 좋지 않다고 한다. 미나토의 방에서 사오리가 발견한 토치 라이터도 사실은 요리에게서 뺏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요리가 빌딩에 방화를 저질렀을 수 있다는 암시가 나온다. 다만 이 사실은 끝까지 참과 거짓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요리는 자신이 돼지 뇌를 가진 병에 걸려서 아빠가 그 병을 치료해 줄 것이고, 병이 다 나으면 엄마가 돌아온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미나토가 엄마 사오리에게 돼지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 물어본 이유도 요리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 사오리는 이 질문에 "그런 건 인간이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 미나토 시점에서는 사오리 시점, 호리 시점에서는 의문투성이었던 미나토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밝혀진다. 폐터널 안에서 혼자 "괴물은 누구게?"를 외치던 미나토는 사실 반대편에서 오는 요리를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그랬던 것이고, 갑자기 차에서 뛰어내렸던 것도 사오리에게 "미안해. 나는 아빠처럼 될 수 없어."라고 말하다가 요리에게서 전화가 오자 자신의 감정을 향한 혼란스러움과 죄책감, 엄마에게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요리와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뒤섞여 나온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미나토의 시점에서는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관람객들도 어렴풋이, 혹은 확실히 눈치챈다. 이 영화는 미스터리, 드라마뿐만 아니라 '퀴어'라는 장르도 담고 있다. 미나토와 요리는 친구 사이 우정을 넘어서 서로를 사랑한다.




호리가 학교에 찾아와 미나토를 붙잡고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추궁했던 날, 가까스로 호리 곁을 벗어난 미나토는 교장을 만난다. 한때 음악 교사였다던 교장에게서 트롬본을 받은 미나토는 호리가 자신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고백하면서,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그걸 말할 수 없어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들통나는 게 무서워서 거짓말을 했다고 토로한다.


교장은 그런 미나토에게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 아니야. 행복은 모두가 가질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는, 말하지 못할 것들은 모두 불어버리라고 한다. 그렇게 교장과 미나토가 부는 트럼펫과 트롬본 소리가, 바로 호리가 학교 옥상 지붕에서 들었던 커다란 뱃고동 같은 소리의 정체였다. 교장이 말한 '말할 수 없는 사실'은 아마 자신의 남편이 차를 타고 후진하다가 뒤에 있던 손녀를 치어 죽게 만든 비극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중에서 사실 손녀를 친 사람은 남편이 아닌 교장 본인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 소문의 사실 여부 또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데, 교장이 미나토에게 "나도 거짓말을 했단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아마도 소문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폭풍우가 찾아온 날 미나토는 요리를 찾아간다. 당시 미나토와 요리는 거리가 조금 멀어진 상태였는데, 할머니 댁으로 가면서 전학을 가야 한다는 요리와 헤어지기 싫다며 붙잡은 미나토가 처음으로 '성애'를 분명하게 자각했을 때, 자신을 껴안고 달래주려는 요리를 밀치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 여담으로 나는 이 장면에서 아직 현실 배우도 나이가 어린 미나토와 요리가 갑자기 키스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 이후 미나토는 요리의 집을 찾아갔지만 요리와 아버지로부터 병이 다 나았고 머지않아 전학을 가며, 좋아하는 여자애도 생겼다는 말을 듣고 망연자실해서 그대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다시 문을 열고 나온 요리가 사실 거짓말이라고 말하자마자 아버지에게 끌려가고, 미나토는 문 앞에서 요리를 부르지만 끝내 만나지는 못했다.


폭풍우가 치던 날 요리는 몸에 멍자국이 생긴 채 욕조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미나토는 그런 요리를 욕조 밖으로 끌어내고 함께 아지트였던 폐기차로 향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폐기차는 쓰러지지 않고 멀쩡히 서 있었다. 둘만의 공간으로 향한 두 아이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기차 안에서 '빅 크런치' ― 대함몰. 우주의 탄생 가설 중 하나인 빅뱅(대폭발)과는 정반대로 온 우주가 한 점으로 축소하여 종말한다는 가설 ― 가 온다며 즐거워한다. 폭풍우가 지난 후 수로를 통해 빠져나온 미나토와 요리는 맑고 화창한 하늘 아래 풀밭을 달리면서,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본래 문으로 막혀 있었던 철교를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괴물'은 누구인가?


처음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작품 제목이 '괴물'임이 의아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말 그대로 정말 크고 기괴한 괴물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내 머릿속에도 그 영화가 깊게 박혀 있는데, 한없이 해맑게 웃는 두 소년이 밝은 하늘 아래 풀밭을 뛰어다니는 포스터에 붙은 제목이 괴물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영화는 사람이 괴물이겠구나'였다. 설마 진짜 괴물이 등장하지는 않을 테니 괴물은 괴물처럼 끔찍하고 텅 빈 누군가를 비유하는 표현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 추측은 맞았다. 다만 '괴물'이 정확히 어떤 대상을 특정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이유로 괴물에 해당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오리에게는 미나토를 폭행한 교사 호리와 그를 감싸고도는 딱딱하고 사무적인 학교 관계자들이, 호리에게는 학교를 위해 희생하라며 자신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교장과 가해자로 자신을 지목한 미나토가, 교장에게는 손녀를 치어 죽게 만든 남편 혹은 자기 자신이, 미나토와 요리에게는 요리를 괴롭히고 학대하는 가해자 집단 아이들과 아버지가 괴물이지 않을까. 그리고 미나토에게는 같은 남학생을 좋아하는 자기 자신과 더불어 그 감정을 '비정상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세상 자체가 괴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괴물 포스터에 있는 캐치프레이즈.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인간성을 비롯한 사람의 마음이 없는 자는 인간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무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을 인간 혹은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짐승이나 괴물이라고 부른다. 사오리는 초반에 아들 미나토가 당한 폭행 사건에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교장과 호리를 보면서 "당신들한테 마음이 있긴 해?"라고 말하며, 인간의 마음도 없는 괴물이라고 분노를 표하는 장면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도 마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나. 영화가 말하는 '괴물'은 누구일까. 애초에 '정상적이지 않고 별나며, 마땅한 도리나 이치에서 어긋난 괴상한 사람'을 뜻하는 괴물에 완전히 들어맞고, 완벽하게 빗나가는 인간이 있긴 할까.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정체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미나토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긴다. 때문에 미나토는 요리가 매만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요리에게서 물수건을 빼앗아 가지고 놀던 가해자 집단 아이들이 물수건을 돌려준 미나토가 요리를 좋아한다며 놀리자 요리를 감싸는 대신 난데없이 몸싸움을 걸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닫고는 돼지 뇌가 되어버렸다며 괴로워한다. 나는 이 장면이 마음 아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자기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미나토의 마음이, 언젠가 나 자신의 부도덕함과 '나는 왜 나인가?'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괴로움에 시달렸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괴물에 가까운 이들은 미나토와 요리, 사오리나 호리가 아니다. 요리를 괴롭히고 호리가 유흥업소에 다닌다고 소문을 낸 가해자 집단 학생들과 요리를 신체 및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요리의 아버지. 그들은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괴물'이라고 부를 법하다.


더불어 교육자로서 지위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호리 ­― 또는 자신의 남편까지도 ― 를 죄인으로 내세운 교장 또한 사회와 개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학교 관계자가 요즘에는 학생보다 학부모 다루기가 힘들다며 학교에 항의하는 부모들을 '몬스터'라고 말한 것처럼, 몇 번이나 학교에 찾아와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호리를 몰아붙이는 사오리 또한 어떤 시선에서는 괴물인지도 모르겠다. ― 다만 사오리는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해 당연히 아들 미나토가 호리로부터 지도와 훈육의 선을 넘은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피해 입은 자식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부모의 태도를 괴상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빌딩에 불을 지른 사람이 요리라면 요리 또한 결백하지 않다. 화재에 휘말려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고, 인명 피해가 없었더라도 어찌 됐든 빌딩이 불에 완전히 타면서 수많은 재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연출이나 정황을 보면 요리가 방화범이라는 점은 기정사실처럼 느껴진다. 유흥업소에 있는 아버지를 죽일 의도가 있었다면 더욱 명백한 범죄가 된다. 자신의 감정을 비밀로 지키기 위해 무고한 호리를 폭력적인 선생님으로 몰고 간 미나토, 미나토와 요리에게 평소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은연중에 자신의 사상을 강조했던 호리도 넓은 관측으로 보면 타인에게 괴로움을 주는 괴상한 사람, 즉 괴물이 될 수 있다.


그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범죄와 학대, 배척과 괴롭힘, 사상과 가치관의 강요,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 거짓말과 루머…. 어쩌면 이 영화는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괴물'의 모습을 등장인물에게 하나씩 부여하여 상징한 것 같기도 하다. 작중에서 미나토가 고양이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가 호리가 그 사실을 교장실에서 말해달라고 하자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번복하는 여학생도 나오는데, 그 학생 또한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치려는 사람의 비겁한 마음과 자신의 안전을 가장 중시하는 감정을 나타난 게 아닐까.


미나토와 요리는 폐기차 안에서 '괴물은 누구게' 놀이를 한다. 각자 머리에 동물이나 사물이 그려진 카드를 붙이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맞히는 게임으로, 우리나라의 금칙어 게임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중에는 괴물이 그려진 카드도 있는데, 게임 이름이 '괴물은 누구게'이므로 아마 자신이 누구인지 맞히지 못하는 사람이나 괴물이 걸린 사람이 지는 규칙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미나토와 요리가 폐기차 안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괴물은 누구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괴물이 누구인지, 괴물이 단순히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맞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다양한 해석과 결말


상징적인 요소와 숨겨진 의미가 있는 영화인 만큼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작중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사오리와 호리가 아이들을 찾아 나설 때 요리의 아버지가 비바람에 밀려 넘어지고 교장이 비를 맞으며 불어나는 하천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은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반하고 자신의 욕망만을 중요시한 어른들이 서서히 무너지거나 비참해지는 과정을 연출한 장면이고, 반대로 아이들이 폭풍우가 지난 후 맑은 하늘 아래에서 뛰노는 장면은 괴로움도 편견도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진실과 진심을 숨기면서 나타난 오해로 갈등이 이루어진다. 사오리는 호리를 오해했고 호리는 미나토를 오해했기에 서로의 진심과 사정을 알지 못했다. 이 영화는 보편적인 집단에서 밀려나 외면당하는 사람, 강자의 핍박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처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고정관념과 압박에 갇힌 미나토가 자신의 마음을 필사적으로 숨겼던 것처럼. 결말 부분에 사라진 철문은 편견과 배척이 사라진 세상, 빅 크런치가 오고 도래한 새로운 세상을 나타낸다는 글도 읽었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며 "나는 왜 태어났어?"라고 묻거나 "다시 태어난다는 건 뭘까? 나는 뭘로 태어날까?"라고 말했던 미나토는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는 것처럼 자신이 '이상하지 않고 정상적인 존재'가 되길 간절히 바랐던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미나토가 마음을 열고 감정을 나누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요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요리는 미나토가 내적 갈등과 혼란을 겪을 때마다 그 감정을 유일하게 이해하며 곁에 있어주었고, 어쩌면 엄마 사오리보다도 미나토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결말 부분에 요리가 "다시 태어난 걸까?"라고 묻자 미나토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원래 그대로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 대사는 미나토가 요리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더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다시 태어나지 않더라도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이윽고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어떠한 희망. 영화 후반부에 아이들이 비바람이 지나가고 화창하게 갠 세상을 자유롭게 내달리는 장면은 그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비롯한 창작물은 어느 한 사람의 평론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감독과 각본가를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가 영화를 만들고, 작품을 전문적으로 해석하는 평론가와 영화 제작자는 수없이 존재하지만, 관객은 영화를 만든 사람조차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제작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가지를 뻗어 색다른 해석과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나름대로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생각한다. 작품의 저작권은 모두 나에게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작품을 공개하는 순간 그것은 내 곁을 떠난다고. 나의 글과 사진을 감상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느끼는 자유는 절대 내가 침범할 수도, 관여할 수도 없는 영역이라고.


영화는 재미있게 보았다. 일본 영화 특유의 섬세한 감정선과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 잔잔한 연출, 관객에게 해석과 뒷이야기를 맡기는 열린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특히 등장인물마다 시점이 달라지며 자꾸 전개가 시간을 거스르는 탓에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어 지루하다는 평도 있고, 동성애 요소를 아쉬운 부분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열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를 떠올리며 그 애는 영화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말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관객과 독자를 만족시킬 완벽한 작품은 세상에 없다. 오히려 감독 입장에서는 해석과 감상을 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하지 않을까.


잡생각이 많고 해석의 여지가 자유로운 작품 감상을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억지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라 무언가를 분석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느낌이다. 이 영화는 그 사이에 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도 있고, 다른 사람의 평론이나 감상문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발견한 부분도 있다. 어쨌든 영화 자체는 내 취향이었다. 사실 퀴어 장르여서 더 마음에 든 것도 있다. 사랑은 잘 모르지만 그래서 더 많은 사랑을 보고 싶다. 만약 미나토나 요리 중 한 사람이 여자아이였다면 작품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고 ― 관객들은 미나토와 요리가 둘 다 남자아이니까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 유대감, 친밀감의 감정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 그렇다면 이 '괴물'이라는 작품도 이야기가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음과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사람이란 무엇일까, 감정이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나와 나를 어떻게 바꿀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 이 영화는 나의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빛을 발하게 했다. 생각함으로써 숨겨진 장치를 발견하고 생각함으로써 영화의 진가를 알게 된다. 하나의 예술 작품을 접하는 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도 있는 신기한 여정이다.


사오리와 호리는 끝내 미나토와 요리를 찾지 못했는데, 폭풍우가 지나고 세상으로 나온 미나토와 요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빅 크런치는 오지 않았고 청명한 하늘 아래 세상은 여전히 폭풍우가 오기 전과 같겠지만, 두 아이의 사랑과 삶이 이전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괴로웠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더불어 엄마인 사오리에게도 언젠가는 진심을 말할 수 있기를. 딱 그만큼만 두렵지 않은 세상과 너그러운 시선이, 언젠가는 아이들과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복잡하지만, 답은 간단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