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대는 분노였다-2

분노

by 시면

<분노: 분노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으로 분노 뒤에는 억울함, 기대, 무력감, 두려움, 사랑 등이 존재한다. 욕구의 좌절, 상처, 왜곡된 사고, 자신에 대한 실망, 학습된 분노 등이 분노를 유발한다.>


나에게 분노는 갑옷과도 같았다. 세상에, 사람에, 환경에, 모든 것에 나는 분노했다. 조금이라도 나를 건드리는 모든 것에 분노의 화살이 돌아갔다. 공격적이고, 감정적이고, 날 서 있었다. 여전히 세상은 무서운 곳이고 나는 그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그러려면 내가 약해 보이지 않도록 갑옷이 필요했으니까.

아빠의 반수 권유를 듣고 난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다시 집을 나와 당시 같은 과 친구와 룸메이트가 되어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벗어난 자유는 달콤했지만, 집에 남겨진 동생과의 연락은 나를 지독한 죄책감으로 이끌었다.


나 혼자만 벗어났다, 동생을 두고.


현실적으로 동생을 데리고 나올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동생은 아직 중학생이고, 아직 학교를 다녀야 했고, 그런 동생을 무턱대고 데리고 나온다고 해서 갓 대학생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구렁텅이에 동생을 버리고 나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빠에게 분노와 원망을 쏟아내다가, 동생에게 가지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대학 생활은 대학 생활대로 나에게 분노를 안겨줘서 내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 조별과제 팀원, 내 예상만큼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동기, 생각만큼 나오지 못한 성적과 같은 것들에 매번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가 내려오길 반복했다.


사실은 무력했고, 두려웠고, 좌절했고, 나를 다그치다가 실망했던 모든 감정은 그렇게 분노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분노의 크기만큼이나 아빠를 향한 증오와 원망도 함께 부풀어 올라 내 안에서는 이런 감정들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곳은 내 장례식장이거나 아빠 장례식장일 것이다.’

이 다짐을 매일같이 반복하며 눈을 뜨고 잠에 들었다.


‘죽기 직전 귀에 속삭여줘야지, 드디어 죽어줘서 고맙다고.’

아빠의 삶 끝자락에 안겨줄 좌절을 상상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처참하게 생을 끝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고통의 한 자락이라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걸 내가 안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걸 원동력으로 나의 20대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20대는 분노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