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는 투쟁이었다-2

애착형성

by 시면

<애착: 영아와 주 양육자 사이의 정서적 유대. 애착은 개인의 애착 상태와 질을 포괄하는 용어이며, 애착 행동은 특정 인물을 좋아하게 되어 그 인물에게 접근하거나 그 접근을 유지하려는 일련의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애착은 영아를 대상으로 시작된 이론이지만 영아 때 형성된 애착유형은 살아가면서 어떤 관계를 경험하느냐에 따라 변화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외가에서 나름 안정적으로 자랐던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과 살게 되면서 불안정한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시 회계사를 준비하기 위해 퇴사를 한 아빠가 주 양육자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을 하던 엄마보다 아빠와의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감정을 예측할 수 없던 아빠, 가정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던 아빠, 그리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었던 아빠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아빠의 감정을 탐색하고 맞추면서 내 안에서 나 자신보다 아빠가 더 중요해졌다.


아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려질 것이다, 아빠의 기준에 맞춰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들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커졌다. 어린 나에게 버려짐은 곧 죽음이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빠에게 매달렸어야 했다. 아빠의 기분이 유독 좋은 때가 종종 있었는데 대표적인 한 가지는 내가 무언가 성취를 했거나, 내가 잘났다는 점이 증명될 때였다. 성적은 물론이요, 당시 진행했던 IQ 검사에서 높은 IQ가 나오자 그렇게나 기뻐하던 아빠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의 성패, 나의 우열, 모든 것이 아빠의 감정을 결정지었다.

그렇게 아빠의 감정은 내 책임이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아빠가 날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받아야 했다. 언제 어떻게 그 사랑이 철회될지 몰랐기 때문에. 나의 아주 작은 행동과 말투 하나에도 사랑은 떠나가고 폭력은 찾아와서 나는 나보다 아빠를 우선하는 것이 생존의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어릴 때는 영재소리 듣던 아이들이 평범함을 찾아가게 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눈에 한 따까리 할 것 같던 나는 그냥저냥 평범한 중고생이 되었는데 이는 아빠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성적표로 시작되는 방학은 내내 폭력의 나날이었고, 맞다가 울다가 잠들기를 반복하는 일상이었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하는 공부는 열심히 해도 아빠가 바라는 성적이 나오기는 어려웠고, 그 결과로 따라오는 폭력은 더더욱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 다시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급기야 나는 시험시간에 손을 떨거나 아예 잠들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당시에는 내가 공부하느라 밤을 지새워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살기 위한 극한의 방어기제였음을 지금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