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셸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 그는 미술시장을 이용한것인가 이용당한것인가?
SAMO는 바스키아의 크루로 Same Old Shitd의 줄인말이다. 그들은 그라피티를 이용해 오래된 미술 시장에 대해 비판하였다. 이 크루는 멤버들간의불화로 끝나버렸는데 유명세에 대한 각자의 다른 시각 때문이었다. 바스키아는 더욱 유명해지길 원했고 멤버인 디아스는 익명으로 남길 원했다. 이러한사건처럼 장 미셸 바스키아에게 명성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후에 디아스는 그의 미술의 질보다 중요했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고. 먼저 부자가 된 후에 그림그리기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는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하였다. 라고 전했다.
1980년대는 경제적 호황과 동시에 미술계 또한 호황을 맞이하였다. 또한 MTV 세대의 탄생은 기존 기성세대의 문화를 뒤집는 새로운 스타와 문화를원했다. 강렬한 원색과 뜻을 알수없는 기호, 자유로운 붓 터치와 낙서로 이루어진 바스키아의 작품은 이러한 이들이 원해오던 새로운 문화였을 것이다. 반항적인사회 분위기와 서구 백인 문화에 대한 저항, 그리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그라피티와 아프리카양식의 혼합된 살아있는 듯한 화풍은 기존 예술에따분함을 느끼던 뉴욕 미술계를 흔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탄생하였다. 그는 당시 1980년대의 미국의 정서와 시대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이며 그당시 미술계의 욕구를 풀어준 작가라고 볼 수 있다. 그를 미국의 신표현주의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본다면 노예의 역사, 인종차별, 흑인들의 정치 등에 주목하는데 이는 백인들에 대한 메세지인 동시에 흑인들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흑인 문화를 주류의 문화로 만들며 이러한 흑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개선했다. 이를 소비하는 계층인 백인 수집가에게 이러한 메세지 보낸다는의미 또한 존재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메세지는 그저 반항적인 표현을 상업적 수단으로만 이해했다는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 상업성과 예술성이라는대립되는 두가지 부분을 워홀은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다” 라는 말 아래 바스키아를 유명인으로 키우기 위해 상업적 수단을 가지리 않았다. 이러한 부분은그의 작품 또한 상업적 면으로의 가치를 알아본 워홀과 미술계의 도구로 보여질 여지를 남긴다. 또한 “흑인 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언제나 따라다니던 그에게그의 인생스토리와 짧은 작품 기간으로 인한 가치 상승은 그를 상업적으로 소비했다는 시선을 버릴 수 없다.
현재 흑인들의 경제적 성장, 그로 인한 미술시장의 유입과 동시에 BLM(2013년 시작된 흑인 과잉진압에 대한 사회운동)또한 미술시장 속 흑인들의 진출에영향을 미쳤다. 이후 미국 내 흑인 작품 구입량은 63%로 급증하였다. 또한 1980년대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증가로 인한 해당 시기의 작품에 대하 수요 또한증가하였고, 바스키아가 가진 상징으로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갈망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2017년 바스키아의 무제가 1250억에 낙찰되며이러한 영향을 증명하였다.그는 명성을 열망하였다. 명성과 유명세는 그가 하고싶던 이야기에 대한 수많은 관심을 가지게 해준다. 또한 흑인 인권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했으며 이러한메세지를 예술 작품으로서 우리가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바스키아는 불꽃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는 진정으로 밝게 타올랐다. 그리고 불은 꺼졌다. 하지만 남은 불씨는 아직도 뜨겁다.’
이말은 수잔이 낙독한 시의 구절이다. 이처럼 그는 앞으로도 흑인 문화에 대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