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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로 가는 시냇물 Jul 26. 2021

누군가에겐 힙지로, 누군가에겐 을지로.

[서울여행]


“언니, 저녁 힙지로에서 먹어요. 그런데 옷을 복고풍으로 입고 가야 한다는데?”라는 20대 그녀들.

“난 인간 연식이 복고잖아!”라는 한마디로 ‘꺄르르르 합격’을 받았다.


요즘 힙하다는 을지로는 익선동의 힙함과는 다르다. 익선동이 오래된 한옥가옥을 리모델링해서 젊은 사람들이 힙한 가게를 내는 반면, 힙지로는 기름때 낀 골목의 오래된 노포 자체를 힙하게 받아들인다. 중장년층에겐 삶의 기름때가 눅진한 골목과 일상의 허름함 같은 노포가, 20대 그들에겐 흑백영화 속 세트장처럼 근사한 경험이 된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점유하고 있으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 재개발이 그리 멀지 않은 때 묻은 골목은 마치 겹쳐진 평행우주 같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간판 앞에서 삼십 분을 기다려 들어간 전집.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90세는 되었을 것 같은 주인 할머니는 쉼 없이 녹두전을 부쳐냈다. 좁은 테이블에 오기 종기 둘러앉아 매운 고추전에 혀를 호호 불면서 양푼 그릇에 막걸리를 부어 건배했다. 옴짝달싹 못하게 사람이 가득한 복고풍 가게에서 그녀들은 모든 것이 마냥 새롭고 신기했고, 복고 연식의 나는 호출해내는 모든 추억이 새로웠다. 함께 까르르 웃는 이 장소 이 순간이 서로가 서로의 시간에 흘러 들어가는, 서로의 우주가 합쳐지는 곳이랄까.



 골목길을 통째로 점유한 만선호프 골뱅이 골목에서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소셜믹스가 일어난다. 요정같이 뽀샤시한 20대 여성들 옆자리에 굵은 주름이 패인 60대 할아버지들이 뒤섞여 앉아있다. 여자도 남자도, 20대도 60대도, 신나서 돌고래소리를 발사하는 사람도 쓴 표정으로 들이키는 사람도, 근사하게 차려입은 페피도 후줄근 목줄 늘어난 티셔츠에 조리를 신은 사람도, 썸 타는 커플도 회식하는 단체도, 여기에 다 있다.


웅성웅성 골목 전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 서울의 옥토버페스트라 했다던데. 낮이면 사람 흔적이 없는 이 공간은 저녁이 되면 포털이 열리고 뮌헨의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된다. 누군가는 힙지로를 통해, 누군가는 을지로를 통해 이곳에 흘러들어온다.


코로나로 모임인원 제한이 있는 요즘 다시 보니. 코로나 전 마지막 여름의 기억은 나의 환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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