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알게 된 건 둘째 아이를 낳은 직후였다. 호르몬 탓인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에 ‘우울증’이란 키워드를 남몰래 이불속에 숨어서 검색하고 상담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한없이 땅으로 꺼지기만 하는 이 지긋지긋한 우울감을 밀어낼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영혼은 어딘가에 두곤 온 사람처럼 몸만 왔다 갔다 하고 아이 둘을 챙기고 식사를 준비하고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일상의 끝 그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그날도 역시 첫째 아이는 등교를 하고 둘째 아이는 낮잠을 재우고 아무런 의욕 없이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나와 같은 우울증으로 삶이 극단적으로 치닫은 주부의 정신과 상담일지를 브런치에 써놓은 글을 발견했다.
‘브런치? 먹는 브런치 아니고?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 작가가 쓴 매거진 형태의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더 극한 상황에서 글을 쓴 작가는 본인의 아픔과 슬픔까지 주저 없이 써 내려갔다. 만난 적도 그리고 앞으로 절대 만날 수도 없을 그 작가의 글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일단 써보자.
학창 시절 글쓰기를 좋아해서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글을 끄적이고 일기를 쓰곤 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정신없이 10여 년의 시간을 지내다 보니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앉아서 글을 쓰는 건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쭈뼛쭈뼛 혼자서 글을 쓰고 혼자만 보는 파일 속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분명 힘든 날을 다시 생각하며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쓰면서 이겨내 보자.
어릴 적부터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나 자신이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내색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말한다고 해결이 되겠어?’ 혹은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뭐 하러 이야기해 그냥 나만 속 끓이고 말지......’라고 생각하며 혼자서 해결하고 끝내야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사실은 글에 내 힘든 마음을 토로하듯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마음을 글로 써 내려가며 혼자 삭혔던 것 같다. 퇴직을 하고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경험은 몇 번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형태의 일이 아니었고 사실 적성에도 잘 맞지 않아서 취미 생활로 남겨둬야지 하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글쓰기는 달랐다. 잘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계속하고 싶었다.
불현듯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읽었던 ‘그렇게 초등 엄마가 된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은경 선생님이 쓰셨던 책 같은데 하고 검색하기 시작했고 이은경 선생님도 브런치를 통해서 쓰는 삶을 시작하시고, 팔자를 바꾸셨다는 멋진 슬로건까지 찾아냈다.
‘나도 내 팔자 좀 바꾸고 싶다.’
비 맞은 중처럼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브런치를 찾아보고 작가가 되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내 개인 생활을 오픈하거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데 익숙지 않아서 인스타그램은 계정만 유지한 채 정보 검색의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은경 선생님의 강연 일정을 찾아보고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하면서 내 감정을 글로 솔직하게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작은 불씨하나는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2기 프로젝트를 모집한다는 선생님의 글에 주저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았다. 40대에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삶이었는데 기대하는 일,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니. 프로젝트에 신청을 하고 첫 강의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구름 위를 둥둥 떠 다니는 듯 설레는 날들을 보냈다.
Unsplash의Lilly Rum
작가신청을 하고 며칠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다행히 합격을 했다. 하지만 합격한 기쁨은 곧 이제 계속 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의미 없는 티브이를 틀어놓고 흘려버린 시간들 책을 읽으면서도 집중하지 못해 쉽게 덮어버렸던 책들을 다시 꺼내보고 천천히 하나씩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그리고 브런치 프로젝트와 함께 나도 모르게 바뀌고 있는 일상에 나도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일단 저녁시간에 당연한 듯 틀어놨던 티브이를 켜는 일이 많이 줄었고,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직 한번에 완독하기에는 이놈의 집중력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모든 일상생활이 아이들에게만 집중돼서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고 과민하게 반응했던 일들도 조금 무던하게 덮고 글쓰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열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들의 간식하나 더 먹는다는 예민한 소리에도 ‘그래 먹어, 하나만 먹어!’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있으니 이 또한 엄청난 변화인 듯싶다.(그래서 아들놈은 내가 글쓰기만 시작하면 냉장고 앞을 서성이다. '엄마 나 이거 하나만 더 먹는다.' 하고 간식을 집어 들고 후다닥 들어가기도 한다.)
한 10년쯤 하다 보면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힘든 육아도 10년 넘게 하고 있으니 글쓰기도 일단 10년 정도 잡고 시작해 봐야겠다. 10년쯤 뒤에도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진행 중인 한 명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쯤 되면 이 부끄러운 글쓰기 실력도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며 얄팍한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