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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SA Feb 24. 2017

#8. 시험관 아기 시술 (2)

쌍둥이 임신과 출산

시험관 아기 시술을 아무런 준비 없이 너무 가볍게 시작해서 안 좋은 결과가 초래 된 것 같아 2차 시험관 아기 시술을 준비할 때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접근하기로 결심했다. 




1)  유산이 된 몸을 회복 시키기 위해서 난임 전문 한방 병원에 내원하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치료비가 꽤 비쌌지만 과감하게 결재하고 2차 시험관 아기 시술을 위한 최적의 자궁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의사 선생님과 의기투합 했다.

2)  회사 근처 헬스장을 등록하고 출근하는 날에는 항상 아침 5시~5시 30분에 일어나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체력을 기르는 운동을 시작했다.

3)  일주일에 1-2번 정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남편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과감하게 술을 끊었다.

4)  식단 조절이 제일 어려웠는데 가급적이면 밀가루와 튀김 음식을 안 먹으려고 노력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 대해서 첨언을 하자면, 다음 시술까지 최소한 3개월 이상 쉬어줘야 몸의 무리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지난 번 글에서 시술 과정을 언급했듯이, 임의적으로 과배란 주사를 맞고 난포를 키우고 성숙한 난포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 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크고 작은 후유증이 발생하기 쉽고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2차 시술까지 거의 넉달 동안 쉬면서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임신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건강한 몸 만들기에 집중했다.

드디어D-DAY가 되어 모든 시술 과정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날, 1차 피검사 수치에서 960 이상의 수치를 확인했고 얼마 뒤에 임신 5주 반이라는 진단과 함께 쌍둥이 임신을 확인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2차 시험관 아기 시술이 끝난 후 병원에서 1차 피검사를 받을 때까지 입원 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깨달았다. 


입원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1)  40대 초중반으로 보였던 언니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항상 누워 있어서 사연이 궁금하여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12번째 시술이라고 대답하면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다짐한 듯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상당히 조심하는 눈치였다.

비용과 건강 문제를 벗어나서 '얼마나 간절하면 시험관 아기 시술을 12번이나 하게 되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더 이상 언니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2)  베트남에서 시집 온 21살의 어린 새댁도 알게 되었는데 3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고 말해주었다.

입원 기간 동안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정을 알게 되었는데 내 편견과 달리 남편의 나이가 28살이었고 결혼한지 2년 정도 된 신혼 부부였다. 남편이 문제가 있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있는데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꽤 받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입원기간 내내 한번도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 한번 하지 않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엔 꼭 성공하기를 응원했는데 결국엔 3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도 실패하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함께 퇴원 준비를 하면서 몇 달 뒤에 다시 올 거라는 말을 남긴 채 쓸쓸하게 떠났다.


그 밖에, 시험관 아기 시술을 성공하여 임신한 케이스도 여럿 봤지만 다들 정말 어렵게 임신한 터라 시술 2번째에 쌍둥이 임신을 성공한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에 속했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중 임신 31주에 갑작스럽게 조산기가 찾아왔고 담당 의사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바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때가 2015년 12월 초였는데 자궁수축검사 결과 당장이라도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자궁수축을 억제 하기 위해서 "라보파"가 투여 되었고 미숙아로 태어날 아이의 호흡 상태를 고려하여 폐성숙 주사도 맞았다.


라보파를 투여 받은지 1시간 정도 지났을까 폐부종이 발생하여 라보파 대신 "트랙토실"을 투여 받기 시작했다.

의료보험이 적용 되도 꽤 비싼 트랙토실을 3주 정도 맞았을때 임신 34주 차가 되었고 더 이상 트랙토실 처방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병원비가 솔직히 걱정 되었지만 가능하면 뱃 속에 아이들을 오랫동안 품고 싶어서 트랙토실 처방을 받고 싶었으나 법적으로 임신 34주 이후에는 처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때가 12월 마지막 주였는데 긴 입원 생활로 인해 많이 지쳐 있었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태어날까봐 거의 침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2016년에 아이들이 태어나기를 소망하며 하루 하루 신앙심에 의지하여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었다.


사실, 임신 말기에 나의 몸 상태는 정말이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척 심각했다.

꽤 심각한 부종으로 인해 폐부종과 폐동맥고혈압을 진단 받아서 저염식 식단으로 끼니를 떼워야 했고 남산 만한 배는 보는 사람들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불러서 누구든 나를 보면 무척 안쓰러워 했다. 

게다가 심각한 불면증으로 인해 하루에 잠을 많이 자봤자 2-3시간 이었고 너무 심하게 부른 배 때문에 똑바로 누워있는 것은 불가능하여 항상 옆으로 누워서 지내야 했다. 


무엇보다 제일 괴로웠던 것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자궁수축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할 때 똑바로 누워 있어야 해서 검사 시간에 거의 매번 호흡곤란으로 힘들어 했다. 


힘들게 임신을 유지하며 지내던 어는 날, 정확히 2016년 1월 3일 일요일 자정이 넘은 시각 양수가 터져서 간호사에게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남편에게 얼른 달려오라고 전화했다.




양수가 터진 후 1시간이 지났을까, 진통이 1분 간격으로 찾아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나는 너무 괴로워 당장 제왕절개 수술을 시켜달라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지던트들은 내가 금식과 좌욕을 안했기 때문에 제왕 절개 수술은 아침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멍청한 답변을 늘어놓기만 했다. 


게다가, 진통으로 괴로워서 똑바로 눕는 것이 너무나도 힘든데 폐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며 엑스레이를 여러 차례 찍었고 혈압을 실시간으로 재면서 사람을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정신은 차리고 있어서 혈압을 왜 이렇게 자주 재냐고 물었더니 혈압이 너무 이상하게 측정 된다면서 자꾸 혈압을 재고 자궁 수축 검사도 계속 하면서 사람을 아주 지치게 만들었다. 


새벽 3시가 조금 지났을까 담당 선생님이 드디어 오셨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내가 수술을 받게 될 경우 중환자실에 입원하거나 더 큰 병원으로 전원 될 수 있다면서 자연분만을 권유하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폐부종과 폐동맥고혈압 때문에 마취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쩔수 없이 자연분만으로 출산하기로 결정하고 분만실에 들어가서 온 힘을 다해 출산에 집중한 결과 아침 7시 7분에 아들 주원이를 출산하고 20분 뒤에 딸 주아를 출산했다. 


35주 3일만에 태어난 아들 주원이는 2.44kg이었고 딸 주아는 2.47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출산하고 2개월만에 회사에 복귀 한 후 주변 사람들이 아이 둘을 어떻게 키우면서 일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정어머니와 어린이 집의 도움으로 쌍둥이 워킹맘이 가능하긴 하다.


다음 글 부터 본격적으로 워킹맘의 일상과 좌충우돌 육아기에 대한 글을 차례대로 쓸 예정이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워킹맘이 나의 글을 공감하고 이해해 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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