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이 된 지금의 내 인생을 돌아보면 무엇이 되었든 한번에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3번이나 갈아 탄 것도 그렇고 소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기까지의 과정도 그렇고 자연임신이 불가능하여 의술의 힘을 빌린 것 보면 나는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과정 속에서 끈질기게 버텨내서 이루어낸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고생 많이 하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성취를 이루신 분들이 보면 내가 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나는 참 힘들었다.
내가 엄살 떠는건지 모르겠지만 쌍둥이 워킹맘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없는 고군분투 인생을 살아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는 중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고생해도 여전히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내가 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나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공감해준다면 그래서 서로 힘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글을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본격적으로 쌍둥이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풀어내기 전에 내가 그동안 어떤 과정으로 살아왔는지 말하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수능을 끝내고 KFC에서 시간당 1750원씩 받고 매장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아직도 기억하는데 당시에 패스트푸드점 시급이 롯데리아는 1500원, 맥도날드는 1600원, KFC는 1750원, 베스킨라빈스는 1800원이었다. 피자헛은 2000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딴에는 롯데리아나 맥도날드보다 시급이 센 KFC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흐뭇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워낙 시급이 짜서 그런지 하루에 5-6시간 일을 해도 매월 받는 돈의 총액은 20만원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고 그나마 받은 돈도 아껴서 모으는 것이 아니라 노느라고 전부 써버렸다.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학교가 집에서 등하교 하기에 워낙 멀어서 학교는 거의 가지 않고 알바하면서 노느라 1년동안 학사경고를 2번 받았다.
(참고로 나는 서울 강북에서 거주했고 학교는 수원 근처였다.)
20살 때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던 중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1살 때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집에서 몇 달 학원비를 내주셨지만 집안 형편이 별로 좋지 못한 탓에 재수학원을 관두고 다시 알바 인생이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시급을 받겠다고 힘들고 궂은 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정식 집에서 접시 닦는 일, 호프집에서 서빙, PC방에서 컴퓨터 관리, 성인오락실에서 캐셔 업무, 호텔에서 서빙 등의 일을 했지만 그때도 정신 못차려서 일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노느라고 전부 써버렸다.
참고로 나는 전형적인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나에게 교육비나 생활비를 지원해줄 형편은 못됐어도 내가 집에 생활비를 보탤 정도로 지독하게 가난한 집은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수능을 보게 되었고 대학을 다시 진학하게 되었다.
이번에 대학에 들어갈 때는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입학해서 무난하게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집 근처 전문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혹시 떨어질까봐 나름 머리 써서 인기 없는 과를 지원했고 1차 추가 모집에서 합격하게 되었다.
지금은 취업 때문에 공과대학의 기계/화학/전기가 인기가 많지만 당시 전문대에 입학 할 때는 공대계열은 인기가 없었다. 전문대 들어갈 때 첫 학기 등록금은 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내주셨지만 그 다음 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대출금은 사회생활 하면서 전부 갚아나갔다. 물론 학교 다니면서 용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늘 아르바이트를 했고 조금씩 돈을 아껴 쓰면서 전공서적도 사고 핸드폰 요금도 내고 친구들과 밥도 사먹었다.
그렇게 2년간 전문대를 다니고 무사히 졸업을 하고 취업시장에 나왔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대학졸업장 말고는 내세울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력서 내는 족족 전부 서류 탈락이었고 딱 1군데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