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이성적인 여자가 무너질 때

4장. 내가 간과한 한 가지

by 소소한 기록자

결혼을 결정할 무렵,

나는 공감 능력을 삶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말이 없는 타입이었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조금 더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서로 맞춰갈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와의 신혼은 평온했다. 우리는 아직 아기 생각이 없었고, 양가 부모님도 서두르지 않았다.

나는 아직 20대였고, 사회초년생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나는 꽤 빠른 결혼에 속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연애 중이었고, 사랑으로 고민하고 상처받고 있었다.

그들과 나는 생활의 패턴도, 관심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져갔다. 그래서 남편과의 대화가 더더욱 필요해졌다.

어느 날은 내가 옆에서 종알종알 떠들면 그도 조금은 맞춰주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살림도 처음이었고, 사회생활 역시 여전히 낯설었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라도 붙잡고 나의 하루와 감정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바빴고, 지쳐 있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마저도 나는 고마워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니었다.


뭔가가,

정말 뭔가가

더 필요했다.


나도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기 나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공감받는 자리가 없었다.

오로지 그만이 내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감정을 설명하고 싶었다. 조리 있고 논리적이지는 않아도 어떤 느낌인지, 어떤 상태인지는 그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설명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감정보다 상황과 사실을 먼저 파악하려 했고, 그 위에서 판단을 내렸다.


말하면 말할수록 나는 감정이 무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정이 충분히 머물기도 전에 분석되고, 정리되고, 파고들리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를 바꾸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그도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겠지,

우리는 서로 다르니까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내 감정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쪽으로 그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거라고.

나 역시 그의 방식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말수를 줄이고, 기대를 낮추고, 혼자 감정을 처리하려 노력했다.

그것이 결혼을 통해 배우는 어른다움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뒤에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간과했던 한 가지는

그의 부족함이 아니라

내 믿음의 방향이었다.


그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그가 살아온 방식대로 그저 ‘그’답게 살고 있었다.

나는 결혼과 사랑이 있으면 사람이 바뀔 수도, 고쳐질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의 구조는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었다.

그의 공감 방식은 나의 공감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고, 그것이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그 차이가 나에게는 너무 컸다.

그 서운함을 정확한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는 정확한 언어를 사용했고, 사실 관계를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설명할수록 점점 더 위축되고 작아져갔다.

더 이상 내색하지 못한 마음들은 괜찮은 척하며 혼자 삼키고, 정리하고, 버티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나를 몰아세웠다.

내 감정이 과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게

사랑의 문제인지,

구조의 문제인지.


다만 분명한 건,

나는 점점 외로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이 외로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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