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이성적인 여자가 무너질 때

5장. 출산 후 관계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by 소소한 기록자

짧은 연애 끝에 결혼을 했기에 나는 둘이서 오롯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결혼 전 우리가 나눴던 계획도 그랬다.

하지만 결혼 이후의 현실은 달랐다.

남편의 바쁜 일정과 늦은 귀가는 일상이었고, 둘만의 시간은 늘 뒤로 밀렸다.

그 와중에 결혼 8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

임신은 나에게 큰 변화였지만, 우리 관계의 온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자신의 일정대로 삶을 유지해 갔고

나는 그 곁에서 혼자 변해가고 있었다.

임신 기간 동안 나는 내가 기대했던 어떤 ‘함께함’을 경험하지 못했다.

드라마 속에서 보던, 배를 쓰다듬으며 태동을 기다리는 설레는 아버지의 모습은 없었다.

남편은 무덤덤했다.

속으로는 기뻤을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설렘이나 두근거림의 표현이 없어서라기보다, 내 감정이 오갈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더 컸다.

그 서운함을 정확히 말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출산 후,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관계의 무게는 분명하게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고, 나는 그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밤은 길었고, 하루하루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바빴고, 나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와 함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혼자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 시기, 나는 견디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남편을 깨우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고, 혼자서 처리했다.

그래야 다툼이 없을 것 같았고, 기대가 없어야 서운함도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짧은 공감이 필요했다.

그것이면 다 되었다.


그래서 “힘들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도와달라는 요청도, 불평도 아닌

그저 내 상태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위로가 나오지 않자 나는 그 말이 지속되어 갔다.


시간이 흐른 뒤, 그 말은 오히려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남편의 “왜 너만 힘드냐”는 말 앞에서 나는 더 이상 그 무엇을 설명할 언어를 잃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말해도 닿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은 말하는 법부터 내려놓는다.


나는 속마음을 꽁꽁 싸매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게 묻고 묻고 묻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어른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나는 육아의 고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운 시간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 시절, 내 감정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오래 고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나는 아내였고, 엄마였지만 누군가의 감정 앞에서는 혼자 버텨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역할만 남았다.

엄마가 되었고, 아내가 되었지만

정작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어 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고립이 나를 얼마나 서서히 무너뜨릴지.


나는 그 시절

아프게 무너진 게 아니라 조용히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는 혼자 너무 오래 버텼다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나의 결혼이 나의 판단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내 감정을 보호하지 못한 채 서서히 설 자리를 앗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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