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받으며 깨달은 사실

하품하는 상담사를 보며 유레카 모멘트

by 메이

교사들은 다 가입되어 있는 교직원 공제회에서는, 2년에 5회 심리상담을 무료로 지원해주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줌으로도 상담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서초에 있는 유명한 상담센터의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잠을 자더라도 혹시나 들을까 봐 지하주차장 내 차 안에서 상담을 할 때도 있었다.


첫째가 자폐진단에서 벗어나 ADHD로 넘어왔을 때,

둘째의 발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남편이 나의 출근길에 이혼하자고 얘기했을 때,

그것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괴로움의 극치에 다다랐을 때,

나를 서포트해주는 사람은 누구지?

가족들은 멀리 있고, 친구들에게 내 사정을 얘기하기에도 부끄럽고,

나는 정말 이 세상에 혼자 인 것 같았다.

무교인 나는 정말로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어디든 다녀야 할 것 같았지만,

그 조차 정기적으로 다닐 물리적 여유가 없었기에,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나의 긴 이야기를 다 하는데도 5회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상담사가 어떤 공부를 거쳐 상담사가 되었는지 교육학에서 배운 정도로만 가볍게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나를 생판 모르는 타인이 내 이야기를 그냥 객관적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그리고 정말로 가능하다면,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바라며 상담을 시작했다.


1회기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그냥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선생님 제 인생은 진짜 엉망진창이에요. 항상 열심히 살아온 저인데 왜 이런 벌을 받는 걸까요?'로 시작하며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엉엉 우는 나를 모니터상으로 바라보시며 '많이 힘드셨구나'라고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셨다.


2,3회기에서는 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첫째가 24개월 때 세브란스 소아정신과를 찾아갔고 자폐스펙트럼인 줄 알고 온갖 치료를 쫓아다녔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종결될 즈음 그보다 더한 둘째가 나타난 이야기, 나의 끝없는 발버둥 속에서 조금도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도움은커녕 이혼하자고 얘기를 한 남편 이야기. 나는 도대체 어디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찾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5회까지도 내 얘기만 하다 끝나겠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꼈지만, 말하면서 카타르시스가 확실히 있었기에 또 4회기를 기다리며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정말,

4회기에서 유레카 모멘트가 찾아왔다.


나는 또 신세한탄, 내 인생 왜 이 그지꼴인가를 읍소하며 얘기하고 있는데,

어머나?

상담사가 하품을 하는 게 아닌가?

목요일 아침 10시였다.

그렇게 졸린 시간대도 아닌데, 울며 얘기하는 내 눈에 들어온 그 하품.


갑자기 그 순간 나는 깨달아버렸다.

나의 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은, 어떤 이에게 하품거리가 될 수 있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내가 상담 많이 해봤는데

너보다 훨씬 힘든 사람 엄청 많아.

넌 멀쩡한 직업 있지, 집 있지, 원할 때 휴직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힘들면 휴직하고 애들한테 매달리든가,

네가 일도 육아도 하나도 안 내려놓으려고 하니까 애들도 남편도 너도 다 힘든 거 아냐

해결책은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불만만 하고 있으니 니 인생이 그 꼴인 거야.


상담사의 그 하품에는

그 메시지가 있는 거 같았다.




때론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사소하게 넘기는’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내 고민은 10억을 날린 사람의 고민에 비하면 작은 고민일 수도 있다.

내 고민은 당장 죽음을 앞둔 자식을 둔 부모의 고민에 비하면 사소한 고민일 수 있다.

내 고민은 어제 자식이 죽은 어미의 슬픔에 비하면 티끌 같은 고민일 수 있다.

내 고민은 아내를 때리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 있는 여자의 분노에 비하면 귀여운 고민일 수 있다.


나는 내 고민들을 사소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뭐,

어쩔 거야

죽을 것도 아닌데

그냥 사는 거지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가능하면 유쾌하고 즐겁게.


나보다 더 사소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 같은 사람도 그냥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 상담사의 하품으로,

5회 차 상담은 무의미해졌다.

나는 5회 차 상담을 취소했다.

정말 유의미한 하품이었고, 상담사는 그 어떤 조언보다도 훌륭한 삶의 지혜를 주었다.




또 하나 더 깨달은 것은 상담을 시작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그 하품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 하품을 얻기까지 내가 상담을 신청했던 노력이 있었다는 선행사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힘들 땐 어떤 방법으로든 도움을 요청하자.

의외의,

아주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상담사의 하품처럼.




수요일 연재
이전 05화발달센터에 앉아서 업무를 해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