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대학을 조기졸업 했었다.
어쩌다 보니 대학원도 정말 드문 케이스로 조기졸업을 했었다.
대학원 조기졸업은 원래 목표하고 시작한 것이긴 하지만, 어쩌다 보니 3학기에 첫째를 임신하게 되어, 논문 통과 얼마 후에 출산을 하게 되었다.
30살의 나이에.
학교도 임신 34주까지 근무했었다.
미친 듯이 바쁘게 달려오던 나의 삶에, 첫째의 출산, 그리고 휴직.
출산의 기쁨과 동시에 밀려오는 것은 공허함이었다.
이렇게 작은 생명과 단 둘이 24시간을 집에서만 있을 수도 있구나.
가끔 심심해하는 나를 위해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 그들은 승승장구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아기를 품에 안고 멈춰 섰는데.
그 감정을 어떻게도 추스리기가 힘들었나 보다.
나는 8개월의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13개월 되던 시점에 복직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직장인의 삶은, 뭐랄까.
직장에 잠깐 몸을 담그고 있다가, 후다닥 집으로 뛰어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그리고 퇴근 후에는 더 고된 육아 업무가 기다리고 있는. 끝나지 않는 고됨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즐거운 순간도,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일 때도 있었지만, 나는 항상 섬에서 홀로 아기를 안고 쓸쓸하게 서있는 기분이었다.
양가 어른들은 아주 멀리 계시고, 기댈 가족이라곤 남편밖에 없는데 남편은 또 이른 출근 늦은 퇴근으로 도움이 안 된다.
항상 아등바등,
그렇지만 밝은 척.
그렇게 잘도 살았다.
그로부터 3년 후 남편의 회사가 지방으로 본사 이전을 하면서 남편도 내려가게 되었다.
나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주말부부를 할지, 따라 내려갈지의 기로에 섰다.
둘째는 항상 마음의 숙제였기 때문에 이번 참에 남편 따라 내려가면서 둘째를 가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육아가 힘들면서 둘째를 가지려고 했던 것은,
나도 언니가 있어서 좋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바쁠 엄마 옆에서 외로울 너를 위해,
우린 다른 가족들도 다 멀리 있으니까,
아이가 둘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또 휴직을 했다.
정말 일이 많던 시기에, 그렇게 탁 하고 휴직을 했다.
나는 또 아무도 모르던 그곳에서 아이와 나와 덩그러니 놓였다.
둘째를 갖겠다고 난임병원도 다니고, 그 와중에 낯선 동네에서 친구도 만들고.
34살이던 그때, 결혼한다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몇몇이 첫 아이를 낳기 시작하던 시절,
나는 둘째를 낳았다.
코로나가 지독하던 2020년의 초였다.
첫째가 13개월이 되던 2021년 봄, 나는 남편을 두고 홀로 아이 둘을 데리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다시 복직.
2년 동안 휴직했지만, 이전에 근무했던 부서에서 다시 근무하며, 다시 일을 손에 잡았다.
코로나로 엉망이던 그 시즌에는 학교를 떠나 있다가, 조금씩 안정화될 때 들어가다 보니, 일은 금방 손에 잡혔다.
대신 나는 첫째만 있을 때보다 더 몸을 사리며 일을 해야만 했다.
회식은 학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그것도 남편이 일찍 집에 와 줄 수 있을 때만 가능.
보충수업은 절대 못 맡습니다.
어느덧 나는 내가 초임시절 그렇게 뒤에서 흉을 보았던 아줌마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2023년, 이전 학교 만기로 새 학교로 옮기면서 그 학교 근처로 이사를 왔다. 남편도 지방이 본사였던 회사를 퇴사하고 서울로 이직을 했다.
첫째는 전학을 왔고, 둘째는 새로운 기관으로 옮겼다.
나는 또 휴직을 했다.
또 이 새로운 터전에서 아이들을 적응시키고 복직을 해야겠다고 했지만,
이번 휴직만큼은 내게 잠깐 숨 쉴 공간이 필요했었기에 ㄹ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휴직이 이제, 3달도 남지 않았다.
며칠 전 복직원을 내고 오면서
나는 또 나에게 펼쳐질 그 끔찍한 싱글워킹맘과 같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첫째는 여전히 생활 습관이 안 잡혀서 가방 안에 일주일 전 가정 통신문이 들어있는데,
둘째는 발달센터 수업을 8개나 다니고 있는데.
휴직 중인데도 우리 집은 여전히 엉망인데,
나에겐 2년 6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이 더 남아 있는데, 왜 복직을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가장 빛날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아직 육아시간이 남아 있기도 하고.
둘째가 꼭 일주일 7회 발달센터를 다닌다고 해서 자폐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휴직을 했는데도 생활습관이 안 잡힌 것은, 엄마가 일을 하고 안 하고 와 무관하게 ADHD가 있어서 그런 거고.
남편과의 관계도 휴직했다고 한들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도 않았다.
대단한 성공을 바라거나 승진을 하고 싶다거나 그래서 복직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사가 굉장히 돈을 많이 받는 직업도 아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회의가 느껴지는 순간도 정말 많다.
나는 다만, 내가 빛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나도 빛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리고, 내년에 복직을 하면, 휴직 이전의 싱글워킹맘과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유연근무를 신청해서 아이들 오전 등원을 담당할 것이고,
1주일에 한 번은 청소도우미를 쓸 것이고,
필요하다면 오후에는 아이돌보미 선생님도 신청할 것이다.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당당하게 돈을 쓰고,
당당하게 거절도 할 것이다.
그렇게, 현명한 워킹맘이 되는 것이 내년의 목표이다.
내가 너무 소진되지 않도록.
내가 너무 너덜너덜해지지 않도록.
하루를 치열하게 보낸 후 잠자리에 누웠을 때 힘에 겨워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그렇게 조금씩 더 현명한 워킹맘이 되는 것이 내년의 목표이다.
잘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