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품격에 대하여
오늘 아침부터 뚜껑 열리는 일이 있었다. 예비 초5 첫째가 어제 태권도에서 들은 얘기를 전해주며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사범님이 그러셨는데, 자기는 방학 때 엄마 출근하면 몰래 컴퓨터 게임하다가, 엄마 오면 자는 척하고 그랬대.”
그리고는 결정타. “사범님도 그랬는데, 나도 방학 때 그렇게 못할 이유 없잖아.” 물론 네가 방학일 때 나도 방학이라 아침부터 함께 부비는 날이 많다. 하지만 AI 연수니, 각종 모임이니, 아침밥만 차려주고 나갈 때도 잦다. 그럴 때마다 홈캠으로 감시(?)하는 엄마가 불만이었던 차였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사범님의 말이 꽤 그럴듯했을 것이다.
사실 이 태권도 사범님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문제는 아이가 그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 그런가 보다’가 아니라 ‘사범님은 멋진 사람인데, 저렇게 했구나’ 하고 그대로 내면화해 버린다는 것.
그래서 얼마 전 3품 심사를 마치고, ‘그래, 이놈의 태권도 이제 그만두자’ 결심까지 했었다. 그런데 아이는 4품까지 가고 싶단다. 그 마음을 알기에 망설이던 찰나, 또 하나가 터진 것이다. 둘째 유치원 등원 준비로 먹이고, 입히고, 양치시키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또 그놈의 사범님 얘기를 들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아니, 사범님이 또 그런 개소리를 했단 말이야?”
순간, 아이의 얼굴이 굳더니 눈물이 뚝 떨어졌다.
“엄마! 개소리는 나쁜 말이잖아! 엄마가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나쁜 거야!”
그제야 알았다. 아이의 태권도 사범님에 대한 사랑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었다는 걸.
이럴 땐 빠른 사과가 답이다.
“엄마가 그런 단어 써서 미안해.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사범님이 그런 얘기 말고, 너희한테 더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그렇게 표현한 엄마가 부족했어.”
오, 나의 빠르고 적절한 대처,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냉정하게 정리해 보면,
사범님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부족한 면이 있고,
나는 아이 앞에서 그걸 ‘개소리’라고 표현한 또 다른 부족한 면이 있다.
어쨌든 질문은 이것이다.
이 태권도, 계속 보내야 하나.
아이의 의지와 어른의 영향력 사이에서,
오늘도 부모의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