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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특기, 겅중겅중

by 오선희

“안 뛸 거지?”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깜빡거리고, 남은 시간이 10초, 9초, 8초… 줄어들고 있을 때, 남편이 항상 나에게 하는 소리이다. 그는 나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 난 뛰지 않는다. 느긋이 걸어가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포동포동 살이 올라 귀여워진 후, 아, 아니아니, 무거워진 후, 웬만하면 뛰지 않는다. 애초에 저 신호를 뛰어야만 제시간에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일을 안 만드는 편이다.


종종걸음으로 걷는 일은 있어도 뛰지는 않는 삶이었던 것 같다. 잠깐의 뜀박질도 없으니, 주기적으로 달리는 생활은 나에게 참으로 낯선 것이다. “내 삶과 어울리는 단어를 모아 줘”라고 AI에게 물으면, ‘뛰다’, ‘달리다’와 같은 말은, 그 데이터의 양이 굉장히 적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데이터가 0에 수렴하는 단어는 ‘겅중겅중’이 되겠다. 이 단어는 ‘긴 다리를 모으고 계속 힘 있게 솟구쳐 뛰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첫째, 난 다리가 길지 않고, 그러므로, 둘째, 높이 뛰는 점프력도 생길 리 만무하다.


어렸을 때, 한 발 뛰기, 두 발 뛰기 같은 놀이나, ‘돈~~가스*’ 하면서 친구의 발을 치는 놀이에 취약했던 것도 내 걸음이 내 몸을 지탱하면서 멀리 뛰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겅중겅중 뛰는 건 참 어렵다. 삶의 여러 단계쯤은 그냥 휙 뛰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은 참 어렵다. 겪어야 하는 모든 과정을 다 겪은 후에야 다음 보상을 얻는 삶이었던 것 같다. 운 좋게 좋은 기회가 얻어 걸리거나 내가 외운 부분에서만 시험 문제가 나온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운데 '돈'이라고 쓰인 원을 발로 한 번 딛고, 바깥으로 나와 '가스' 하며 한 발 뛰기를 하며 자리를 잡는다. 다음 차례의 사람이 같은 동작으로 하며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의 발을 쳐야 하는 놀이. (글방에서 이 놀이를 대부분 몰라 무척 당황하며 각주를 남긴다.)


나 빼고 다 겅중겅중 뛰어 높이, 그리고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너무 느릿느릿 종종거리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조바심은 쉽게 걷혔다. 나는 올곧이 시간을 견뎌내 얻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높은 자리에 올려 주겠다 말하면 신나기보다 겁부터 나는 사람. 누가 칭찬해 주면 오히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는 사람. 겁으로부터,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온전히 시간을 들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겅중겅중 보폭을 넓게 가져가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얻으려 욕심내면, 넘어졌을 때 더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이 빙판일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나는 늘 그렇듯 내가 딛고 있는 땅부터 살피고, 내 다리 길이 혹은 점프능력을 점검하고, 사뿐히 꾸준히 첫발을 내딛겠다. 일관된 속도로 내가 할 1인분의 몫을 밟아 나가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 박음질하듯이 촘촘하게.


‘웅웅(휴대전화 알림소리)’ 글을 쓰던 중, 수강생의 질문 글이 올라왔다. “이번 시험이 세 번째인데, 진짜 좋은 점수 받고 싶은데, 제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문자 안에서 한숨이 들리는 것 같았다. 간절한 그에게 답글을 남겼다. “이 시험이 공부할 게 많아서 다들 힘들어 하시죠. ○○ 님만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도 잘 하고 계십니다. 시험 얼마 안 남았으니, 끝까지 열심히 달립시다.”라고… ‘겅중겅중’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랬나, 자연스럽게 내 손가락이 ‘달립시다’를 치고, 엔터를 똭! 눌렀던 것이다. 이제 보니, 실제로 달리진 않았으나, 난 계속 달리고 있었나 보다. 속도가 아니라 열정으로. ‘빨리’가 아니라 ‘꾸준함’으로 말이다. 긴 다리를 가지려면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할 것 같지만, 긴 열정은 현생에도 가능할 것 같다. 작은 발걸음에도 밀도 있는 열정을 담아, 겅———중———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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