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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털구털, 서툴다

by 오선희

오랜만에 다이소에 갔다가 학생들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개학이 얼마 안 남았음을 실감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바구니에 노트도 담고, 형광펜도 담고, 포스트잇도 담았다. 기나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학교에 가는 게 너무너무 싫은 마음, 그리고 한편으로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설레는 마음. 단순히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것도 설레는 마음 가득이겠지만, 아예 상급학교로 입학하는 마음은 어떨까? 설레는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클지도 모르겠다. 새학년이 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병결석을 해 본 사람으로서,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개근상을 한 번도 못 받아본 사람으로서, 그 두려움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이소 바구니 속 설렘 가득한 학용품 중 포스트잇이 보였다. 포스트잇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나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당시만 해도 포스트잇은 고가의 학용품이었다. 매번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입학할 때나 겨우 한 번쯤 사보는 학용품이었다. 그래서 전략을 잘 짜야 했다.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노오란 포스트잇에 아무 내용이나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바보’ 이런 글자를 포스트잇에 대충 써서 친구 등판에 붙여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종이 한 장이 너무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오면 그때 한 장을 고이 뜯어 교과서 위에 잘 붙여 두고, 가장 예쁜 글씨로 필기를 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포스트잇을 대하는 내 손은 늘 주저주저. 포스트잇은 비닐 봉투에 잘 담겨 있었는데, 혹여나 종이가 상할까 하여 늘 비닐 봉투에 잘 넣어 가방 맨 앞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수업 시간이 되면 가방 주머니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비닐 봉투를 투두둑 뜯어서 안의 내용물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아직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비닐봉투에 넣어두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 보던 뒷자리 아이는 “야, 그냥 써!! 뺐다 넣다 뺐다 넣다, 뭐 하냐?”라고 말해서 난 민망해 하며 웃었었다. 지금 같았으면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뭐 그렇게 말했겠지만, 그땐 학기 초여서 그런지 수줍고도 서툴게 그 상황을 넘겼었다.


포스트잇 한 장 쓰는 것도 신중했던 그 시절, 물건 하나 쓰는 것도 이 정도이니, 친구를 사귀는 것도 참으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원래 신중하면 실수가 줄어들고, 서툰 행동 또한 덜 나타나야 할 것 같지만, 그땐 왜 그리도 신중하려 노력하면서도 계속 꾸준히 서툴렀을까. 우리말 ‘서털구털’은 ‘말이나 행동이 침착하고 단정하지 못하며 어설프고 서투른 모양.’을 뜻한다.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라는 의미의 ‘털털하다’와 의미가 혼동될 수 있지만, ‘서털구털’에는 분명 긍정적인 의미는 없다. ‘서툴’이 ‘서털’이 되었다 생각하면 외우기 좀 편할 것이다.


신중하게 한 장 한 장 쓰던 포스트잇은 비 오던 학기초의 어느 날, 비에 흠뻑 젖어 반절 이상을 버렸어야 했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듯싶었다. 매번 비닐 봉투에 꼬박꼬박 잘 싸두다가 그날은 왜 대충 가방에 넣었던 건지, 가방 지퍼 틈을 따라 들어온 빗물은 포스트잇에 적극적으로 스며들었다. 신중하려 했던 내 행동은 결과적으로 서툰 행동이었다.


이렇게 순간순간 서털구털 행동했던 어린 중학생의 모습이 3월의 시작, 지금 이 시점에 떠오른 것은, 그 시절 나에게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그때 나이의 3배가 되었으나 아직도 서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이미 2개월이나 지났지만, 심정상 3월이 되어서야 한해를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내가 학생들의 학사일정에 따라 살고 있어서일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계절의 시작인 봄이 3월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나 포함 모든 사람들이 3월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솜털구름 같이 부푼, 설레는 마음 안에도, 조심하려다 오히려 서털구털하게 되는 행동들이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노래가사처럼 처음은 늘 우리를 어리숙한 실수쟁이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모든 것을 털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또 만약 동료나 후배의 그런 순간을 목도한다면, 털복숭이 강아지 쓰다듬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들을 다독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두가 털 끝 하나 상하지 않도록, 귀하게 서로를 대접하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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