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을 부추기는 음식

by 오선희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고 우리동네 한식뷔페를 찾았다. 하는 일에 비해 성과가 별로 나지 않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배는 규칙적으로 고픈지, 고기반찬이 나오길 기대하며 식당의 문을 열었다.


아쉽다. 고기반찬은 없었다. 대신 오늘 메인은 갓 부쳐 나온 부추 부침개와 김치 부침개. 부침개에도 탄수화물이 들어 있지만, 나는 늘 밥 또한 많이 먹고 싶어서, 밥을 잔뜩 푼 다음 부침개도 잔뜩 담는다. 탄탄한 몸매가 되고자,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더하고 있다. 어, 간장? 간장이 없다. 하지만 부침개를 반찬으로 먹을 때, 간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김치, 깍두기, 멸치볶음 같은 간간한 반찬이 간장 역할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별 문제 없이 밥과 반찬을 담고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어떤 반찬을 제일 먼저 먹을까. 주위를 한 번 둘러보지만, 나의 시작은 늘 ‘국물’이다. 우선 속을 달래야지 생각하며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식욕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국물 한 숟가락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빠가 생전에 ‘국 없으면 밥 안 먹어’를 시전하셨어서 엄마가 고생이 많으셨는데, 그 아빠의 그 딸이라고 나 또한 밥 먹을 때마다 국을 찾는다. 오늘은 뜨끈한 콩나물국이었다. 콩나물국 한 숟가락 먹을 때, 딸려 온 콩나물 한 줄기가 입안에 들어와도 굳이 내치지 않는다. 그냥 먹는다. 아삭한 식감이 더욱 재밌다.


오늘의 메인 반찬 부추 부침개를 먹어볼 시간이다. 다른 재료는 하나도 넣지 않고, 오로지 부추만으로 완성한 부추 부침개였다. 얄따란 부추가 가지런히 빽빽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절반 정도 접어 입에 쏙 넣었다. 나에게 부추는 사실 맛을 정의하기 어려운 식재료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옆에 있는 남편에게 물어봤다. “부추가 맛이 어떻지?”라고 했더니, “쌉싸름까진 아니고, 삽사름?”이라는 별 영양가 없는 말을 내놓았다. 부추는 매콤한 양념에 무쳐 먹으면 매콤하고, 간장 국물에 넣으면 짭쪼롬하다. 그냥 있을 땐 뻣뻣하다가 국밥에 넣으면 흐물흐물해져서 그 국물의 맛을 흠뻑 머금는다. 다른 재료의 맛을 부추겨서 부추인가. 이런 부추와 밀가루 반죽의 만남이라니. 과연 어떨까 기대하면 냠냠 성실히 씹었다.


"어멋! 깜짝이야!"(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깜짝이야’를 외친다) 부추 부침개가 맛있다. 고기반찬을 대체할 만한 풍미가 있다고나 할까. 너무 바삭바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눅진 것도 아닌 익힘의 정도가 딱 적당했다. 나도 모르게 목을 쭉 빼고 오픈 키친에 계신 사장님을 쳐다보았다. 기름진 입술과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에, 사장님은 소리 없이 왜 그러냐는 듯 눈빛을 건네셨고,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맛있어요’라고 외쳤다. 예쁘게 말하는 자에게 복은 오는 법. 사장님은 새롭게 부친 따끈따끈한 부추 부침개를 프라이팬째 들고 오시더니 내 그릇에 몇 개 놓아주셨다. 그렇다면 응당 한 번 더 주접을 떨어 주어야 한다. “사장님, 부추 부침개 너무 맛있어요!”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부침개를 원래 잘해.”


내가 부침개를 원래 잘해. 원래 잘해. ‘원래’라는 말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근데 ‘원래’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사실 원래 잘하는 게 어디 있겠나. 이 정도의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마 수만 시간을 쌓으셨을 것이다. 식당을 오래 해 보셨던 사장님이기에 이런 말씀을 자신 있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난 늘 자신감이 부족해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되면 “제가 원래 잘해… 잘한다고 생각해요.”처럼 확신을 숨기고 겸손을 가장한 의기소침함을 드러내는 편이다. 그런데 뭐 내가 ‘일등’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세계 최고’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잘한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던가. ‘잘한다’라는 말은, 그리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던가. 사장님의 부침개처럼, 나에게도 고작 몇 명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재주가 있을 텐데, 그 영역에서만큼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으면 좋겠다.


부침개는 한 번에 뒤집어야 한다. 그러려면 바닥 면을 완벽히 익혀야 한다. 머뭇거림 없이 한 번에 뒤집은 부침개는 절반 정도의 성공을 보장받는다.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익어진 바닥면이 세상에 나타나는 순간이 왔을 때, 제대로 자신감을 내비칠 수 있도록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노릇노릇해져야겠다. 오늘의 점심 식사도 성공적이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사장님의 말씀을 되뇌어 본다. “내가 원래 잘해.” 자신감을 부추기는 말에 어깨를 들썩들썩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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