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영양제

by 오선희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수저를 왼손가락 몇 개로 잡은 뒤, 동그랗고 하얀 접시를 왼손바닥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안에 밥과 반찬을 담는다. 밥과 반찬의 조화를 생각하며, 반찬에 대한 나의 호불호를 생각하며, 차분히 이 절차를 진행하고 싶은데, 갑자기 손님이 몰리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뒤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뭐든 뜻대로 잘 안 된다.


주저하는 내 곁으로 다가온 남편은 “내가 뒤에 있으니, 천천히 담아”라고 말했다. 마치 자신이 날 지켜주겠다는, 흡사 프러포즈 같은 문구를 민망하지도 않은지 내뱉었다. 나는 내 뒤를 맡길 만한 전우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밥 먹으러 와서 이런 전우애를 느낄 줄이야. 자리를 잡은 후, 남편 것까지 물 두 잔을 떠서 왔는데, 그새를 못 기다리고 허겁지겁 밥을 입에 넣는 남편의 행태를 목격하고야 말았다. 아까는 내 뒤를 지켜준다며 믿음직스러운 멘트를 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배부터 채우겠다는 그의 태도에 배신감이 들어 뒤통수가 얼얼했다.


뒤통수만큼이나 혀가 얼얼해지는 시간.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매운 냄새가 났었는데, 범인이 누구인고 봤더니, 바로 꽈리고추가 들어간 멸치볶음이었다. 매운 걸 원래는 잘 먹었는데, 남편과 살면서 매운 것을 멀리했더니, 나 또한 매운 것에 소극적여졌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이거 매워요?’라고 여쭈어보면, 식당 사장님은 ‘안 매워요. 신라면 정도?’라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에-? 신라면만큼이나 매워요?’라고 대꾸할 정도다. 그러니 매운 꽈리고추를 잘 먹을 수 없을 거란 걸 알았다. 그래도 한번 도전은 해 봐야지. 너무 매울 것을 대비하여 밥 한 숟가락을 큼지막하게 떠 놓은 후, 꽈리고추와 멸치 약 두 마리 정도를 입에 넣고 야무지게 씹었다. 응, 뭐 괜찮은데? 하려는데, 순간 들숨과 함께 매운 기운이 목구멍에 밀려들어왔다. 맵다. 진짜 맵다. 땀이 쫙 났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한바탕 난 땀이 에어컨 바람에 날아가고, 입 안에 남은 매운 기운이 점점 사라지면서,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 쌓일 때 매운 음식을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데다, 멸치도 먹었으니, 뼈도 튼튼해졌겠지 생각하니 더욱 뿌듯했다. 사실 멸치볶음과 같은 밑반찬은 그 양을 많이 해서 집에 놔두면 밥 먹을 때마다 꺼내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런데 그것도 맛있어야 손이 가기 마련이다. 멸치볶음을 잘 만들어 보려고 몇 번이나 도전해 봤지만, 멸치들이 서로 엉겨 붙어 젓가락으로 떼어낼 수 없는 한 덩이가 되어버렸다. 명절 선물로 들어온 비싼 멸치를 그렇게 낭비한 뒤론, 내가 직접 만드는 일은 없었다. 완성된 멸치볶음을 누가 준다고 하면 버선발로 나가 넙죽 받아 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멸치볶음을 주기적으로 먹지 못하는 우리의 뼈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멸치볶음은 식당에서만이라도 꼬박꼬박 먹어야 할 음식이 되었다. 다행히도 사장님은 멸치볶음을 매번 만들어 주셨다. 어떨 땐 오늘처럼 꽈리 고추를 넣어 주시기도 하고, 어떨 땐 얇게 썬 마늘을 넣어 주시기도 하셨다. 어떤 것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꼭꼭 씹어 먹었다. 사장님은 이렇게 멸치볶음을 잘 만드시니, 뼈도 튼튼하실 거야. 장수하셔야 합니다. 뼈도 튼튼하셔야 하고요.


밥을 다 먹고 정수기 앞에서 물 한 잔 더 마시는데, 눈앞에 사장님이 드시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양제가 보였다. 어르신들이 많이 드시는 단백질 파우더도 있었고, 그 옆에 칼슘 영양제도 있었다. 멸치볶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거운 웍을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셔야 하니,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시겠지. 또 불 앞에서 새벽부터 요리를 하시려면 무릎도 많이 아프시겠지. 사장님의 밥을 우리 엄마 밥보다 더 많이 먹고 있는 요즘, 엄마 걱정하듯 사장님의 뼈 건강도 걱정이 되었다.


문득 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배웠던 ‘노동 소외’가 생각났다. 엄청 비싼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비싼 자동차를 탈 수 없는 현상, 그것이 바로 노동 소외라고 한다.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에서 이루어내는 성과들이 자신의 삶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장님이 멸치볶음을 만드시면서 정작 당신의 뼈 건강은 신경 쓰지 못하는 현상이 ‘노동 소외’와 유사하지 않을까. 밥 먹다가 노동 소외까지 언급하는 게 너무 과한 것인가 싶지만, 난 밥 먹다가 전우애도 느껴본 사람이니 이 역시 어색하지 않다. 사장님이 손목을 조금이라도 덜 쓰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앉았던 자리도 싹 닦고, 의자도 안으로 집어넣고, 다 먹은 그릇도 퇴식구에 얌전히 내려놓고 나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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