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반 없는 날

by 오선희

요즘 한식뷔페는 SNS 계정에 <오늘의 메뉴>를 올려 주지만, 내가 자주 가는 식당에는 <오늘의 메뉴> 따윈 없다. 모든 것은 사장님의 머릿속에 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은, 예상치 못한 반찬이 중간에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끔 계획에 없던 계란 프라이가 나오기도 하고, 동그랑땡을 구워 주시기도 한다.


‘오늘의 메뉴를 공개하고 깜짝 반찬 없기’ 대 ‘오늘의 메뉴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 가끔 깜짝 반찬 만나기’를 두고 밸런스 게임을 한다면 당연히 나는 깜짝 반찬을 선택할 거다. 예고 없이 찾아온 반찬이 나를 두 번 깜짝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예고 없어서 깜짝, 맛있어서 깜짝! 예고 없이 찾아오는 반가운 반찬은 바로 떡볶이. 엽떡보다도 신전보다도 맛이 있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식당에 들어가는데 달콤한 떡볶이의 향이 나면, 그때부터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파티는 시작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중학교가 딱 하나 있는데, 두 개의 초등학교에서 모여든 신입생을 맞이하느라 요즘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저출산 시대에 학생들이 많이 모인다는 건, 무진장 반가운 일일 수 있겠으나, 요즘 같은 더위에 땡볕에서 일하시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거의 초콜릿 빛깔이 되신 아저씨들의 얼굴을 보면 너무 안쓰럽다. 내가 차린 것도 아니지만 ‘많이 드세요. 물도 많이 드세요.’ 속으로 말하게 된다.


아저씨들이 몰릴 시간이 되었나 보다. 얼른 자리를 비켜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일어나는데, 아저씨들의 그릇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을 하고 오셨기 때문에 밥을 많이 푸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저씨들의 밥 양은 많지 않았다. ‘오늘 떡볶이였는데? 난 두 번이나 퍼서 먹었는데? 떡볶이가 나온 날인데 이렇게 적게 드신단 말이에요?’ 옆자리에 앉아 진지하게 묻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 힘들게 일하면 입맛도 떨어진다는데, 아저씨들도 그러신 것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


하지만 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저씨의 넓은 그릇 옆에는 떡볶이만 담긴 국그릇이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떡볶이는 국그릇에 따로 담아 먹을 정도로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 사장님의 떡볶이는 아저씨들의 입맛도 만족시킨 메뉴였던 것이다. 갑자기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특정 음식이 어떤 세대를 대표하는 경향이 있다. 떡볶이가 바로 그렇다. 예를 들어, 중년의 남성들이 모여 떡볶이를 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떡볶이 집에 들어가 당면 사리를 넣을까, 쫄면 사리를 넣을까 고민하시는 모습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중년의 떡볶이러버, 노년의 떡볶이러버들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할머니가 되어서도 떡볶이를 벗 삼아 술도 한잔 하고, 밥도 먹고 싶다. 심지어 칠순 잔치에도 떡볶이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그러하므로 떡볶이가, 온 세대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되었으면 한다. 떡볶이는 걸죽하게 국물이 있어 흡사 탕이나 수프 같은 느낌인데, 왜 ‘볶이’라고 했겠는가. 전세대에 걸쳐 지지고 볶는 삶과 어울려서는 아닐까 멋쩍은 농담을 건넨다.


사장님의 떡볶이는 쌀떡이다. 부엌에서 뭉근하게 끓여서 양념이 떡에 잘 배면 그때 내어 주신다. 그래서 떡볶이 그릇의 어디를 퍼도 다 맛있다. 뿐만 아니라 어묵을 엄청 크게 잘라서 넣어주시는데, 국물에 푹 익어진 어묵이 원래보다 약 1.5배 커진 듯하다. 난 아저씨들과 다르게 그냥 그릇 하나에 밥과 떡볶이를 함께 담는다. 떡볶이를 거의 다 먹을 때가 되면, 떡볶이 국물이 밥에 슬며시 스며들어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던가? 뭐든지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민족 아니던가? 밥만 있다면 같은 메뉴로 2차까지 보낼 수 있다. 나도 떡볶이 국물로 점심밥의 2차를 맞이했다. 김가루까지 솔솔 뿌려져 있었다면 그 맛이 더욱더 환상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주머니에 김가루를 넣고 다녀야 할까 보다. 이런 날은 잔반도 없다. 깔끔하게 한식과 분식을 끝내고 깨끗해진 그릇을 들고 퇴식구로 향했다. 잔반이 사라지면서 잡념도 사라지는 오늘 점심도 잘 먹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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