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건 왜 다 맛있을까

by 오선희

‘동그란 건 왜 다 맛있을까’ 하며 신이 난 상태로 집어든 오늘의 반찬은 동그랑땡. 이 역시 한식뷔페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 중 하나이다. 원래 동그랑땡은 고기를 잘게 다진 후, 그 안에 야채를 넣고, 밀가루 옷 한 번, 계란 옷 한 번 입혀서 동글 납작하게 구워내는 음식이다. 그런데 한식뷔페에서는 대량으로 반찬을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그 과정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할 여력이 없다. 그 대신 한식뷔페에서는 대량으로 만들어진 기성품 냉동 동그랑땡을 구워주신다. 이 동그랑땡은 고기와 야채의 질감은 잘 느껴지지 않고, 그 둘이 마구 섞여 하나가 되어버린 소시지를 먹는 느낌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다. 내 입에 맛있는데, 뭐. 난 항상 입맛이 고급지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입맛이 고급지다면, 그 고급진 입맛을 만족시키느라 난 매우 자주 까다로워지고, 돈도 많이 써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입맛뿐인가. 귀금속 알레르기가 없어서, 천 원짜리 귀걸이를 해도 멀쩡하다. 그래서 로드샵에서 산 귀걸이로도 쉽게 멋부릴 수 있다. 난 이 정도로 고급진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7500원짜리 한식 뷔페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화려하고 고급진 음식이 아니다. 적당히 짜고 적당히 단맛이 깃든 덜 고급진 반찬을 원한다. 7500원을 내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멋진 음식을 요구한다면,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어쩌다 매우 고급진 음식이 나오면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나에게 7500원에는 이런 의미도 담겨 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수고로움, 재료를 사서 다듬는 불편함, 맛있게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 뒤처리하는 번거로움, 오늘 내가 설거지를 했으면, 다음은 반려인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뭐 니 일 내 일 따지는 치사함들이 모두 상쇄되는 가격이 바로 7500원이다. 이 모든 문제를 비교적 저렴하게 7500원에 해결한 셈이다. 그렇게 나는 동글동글 동그랑땡이 나오는 한식뷔페에서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삶을 택했다.


동그랑땡처럼 동그란 분홍 소세지, 호박전, 연근 조림, 알감자 조림, 동그란 어묵 등등 동그란 것들은 왜 다 맛있을까. 심지어 여러 재료를 넣고 동그랗게 말아 먹는 김밥은 최고로 맛있다. 이렇게 동그란 것을 먹어서 내 얼굴은 점점 더 동그래지고 있는지도… ‘얼굴이 동그란 사람은 단발머리를 하면 더 동그래 보이니, 하지 마세요’라는 내용의 SNS 릴스를 보는데, 순간 뜨끔했다. 조만간 단발머리를 하려던 내 의도를 들켜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 얼굴형이 동그라면 안 됩니까?”라고 화면에 대고 말할 뻔했다. 왜 꼭 얼굴은 갸름해야 할까, 동그라면 안 되나? 동그랑땡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살아가면 안 되나? 그렇게 동그랑땡처럼 맛있는 인생을 살아가면 안 되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식뷔페의 동그랑땡처럼 적당히 고급진 인생도 꿈꾼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도 한식뷔페의 동그랑땡을 정성껏 담는다. 동그란 접시에 밥을 가운데에 담고, 밥을 둘러싸 하나의 꽃 모양이 되도록 동그랑땡을 동그랗게 담는다. 동그랑땡 하나하나가 꽃잎이 되도록 말이다. 사실 어떤 아름다움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동그랑땡을 욕심내서 많이 담았다가 나중에 남길까 봐 걱정되어서 하는 행동이다. 밥의 양과 동그랑땡의 양이 적당히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밥의 양과 동그랑땡의 양을 가늠하기 위해 접시에 꽃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당하게 양이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또 밥 먹는 열정이 한식뷔페의 그릇 위에서 찬란히 꽃피워진다.


한식뷔페는 먹고 싶은 만큼 더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사장님이 이렇게 음식을 퍼주면 뭐가 남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한식뷔페에 오는 손님들 중에는 음식 남기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건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본성이다. 이렇게 적당히 담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식뷔페는 살아남을 수 있다. 계속 이렇게 적당히 고급진 동그랑땡을 먹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한식뷔페여, 영원하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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