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싫어하는 채소의 대표 주자로 시금치가 거론된 것은 왜일까. 뽀빠이까지 나서서 아이들 시금치 먹이기에 최선을 다했던 건 진짜 아이들이 시금치를 싫어했기 때문일까. 채소를 먹지 않는 편식쟁이였던 내가, 국의 채소 건더기까지 다 퍼먹기 시작했던 건, 시금칫국을 만나고부터였다. 시금치는 나도 먹는데, 아이들이 시금치를 싫어할 리 없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것은 그때의 내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었던 어린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금칫국은 된장을 풀어 짭쪼롬하게 끓여 내는데, 그 안에 든 흐물흐물해진 시금치가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잘 넘어가서 부담이 없었다. “아, 좋다.” 아재 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시금칫국을 먹으니, 엄마가 나는 어렸을 때도 시금칫국에 밥을 말아주면 그렇게 잘 받아먹었다고 하셨다. 어린 아가에게 입맛이라는 것이 생성되기 전에 맛 본 시금칫국이 현재의 식성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시장이나 마트에 시금치가 싸게 나오면 괜히 눈길이 가고, 기어이 사 와서는, 번거롭지도 않은지 시금치에 붙은 흙을 씻어내고, 뿌리 부분을 잘라낸 뒤, 된장 넣고 푹 끓여 시금칫국을 만들곤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시금칫국은 늘 맛있었지만, 시금치를 데칠 때 나던 냄새는 그리 반갑지 않았다. 엄마가 시금치를 데치기만 해도, “엄마 시금치 데쳐?”라며 뾰족한 반응을 보였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 냄새에 중독되어 시금치를 데치는 냄비 앞을 떠날 수가 없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싫었던 게 좋아지기도 하니, 참으로 신기하다. 그러면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좋았던 게 싫어지기도 하겠지? 싫어진 걸 뭘 또 떠올리나 싶어 생각은 그만하기로 한다.
나야 두 식구 분량의 시금칫국을 끓여내면 되니, 뭐 대단한 손맛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한식뷔페에서 엄청 큰 솥에 시금칫국을 맛 좋게 끓여내시려면 엄청 대단한 손맛이 필요할 것 같다. 한식뷔페에 시금칫국이 나온 날은 늘 그 맛을 파헤쳐보기 위해 심사위원의 마음으로 국을 받지만, 한 숟가락 국물 맛을 본 이후에는 곧바로 무장해제된다. 그냥 너무 맛있어서 아재 같은 감탄사를 또 내뱉고야 마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을 끓이는데도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걸까. 큰 솥에 국을 끓이는 것에도 만 시간의 법칙이 통하는 거겠지, 오래 하셨으니 맛을 잘 내시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단골 손님으로서 오픈 키친을 면밀히 살펴본 바로는, 커다란 솥 아래까지 국자를 넣어 자주 저어서 양념이 고루 섞이도록 하는 것도 좋은 맛을 만들어내는 비법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꾸준함의 힘을 여기에서도 또 배운다.
그런데 문제는 시금치의 치사스러움에 있다. 시금치는 물에 한 번 데치면 그 양이 말도 안 되게 확 줄어들기 때문에, 시금치를 많이 사도 정작 내 입에 들어오는 양은 매우 적다. 시금치는 꼭 이렇게 양이 적어지더라, 시금치가 아주 양아치야. 이렇게 혼잣말이 나오는 것도, 스스로 라임을 잘 맞춰서 신이 나는 것도 시금치를 요리할 때 자주 있는 일이다. 우리말에는 ‘시금털털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일이나 말이 실망스럽고 못마땅하다’라는 뜻인데, 데친 후 팍 쪼그라드는 시금치를 향한 나의 마음이 이 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사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채소는 생으로 먹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으나, 적어진 양의 채소가 채소의 ‘정수’, 액기스라 여기며, 아껴 먹을 마음이 생기는 건 긍정적인 상황이라 하겠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채소가 빳빳한 식물 본래의 모습일 때 그것을 입에 들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샐러드보다 채소를 육수에 푹 적셔 먹는 샤브샤브를 더 좋아하고, 미나리도 삼겹살 기름에 볶아 먹길 좋아하는 걸 보면, 한풀 꺾인 채소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손에 들어오는 시금치의 양이 적어 약간 시금털털했지만, 내 입에 들어오는 시금치의 맛은 시금털털하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데친 시금치와 같은 상황을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되던가. 생기있던 첫 출발과 달리 마지막에 가선 의지도, 열정도 쪼그라들고, 성과마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작고 귀여워진 상황들 말이다. 당장은 눈앞에 놓인 결과물들이 데친 시금치처럼 실망스러울지라도 그 결과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여기면 좋을 것 같다. 데친 시금치가 된장을 만난다면 담백한 시금칫국이 될 수 있고, 참기름과 만난다면 맛난 시금치무침이 될 수 있듯이 지금 나는 정수를 품고 새롭게 시너지를 만들어낼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여긴다면 시금치 먹은 뽀빠이처럼 힘이 좀 솟아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