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뷔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즐거움은 바로 새로운 한식뷔페를 찾아가 보는 것이다. 반찬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한 끼의 양식을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그런데 이제 막걸리를 좀 곁들이는 아저씨들의 한식뷔페와 달리, 반찬에도 트렌드가 엿보이는,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한식뷔페에 가 보았다. 가격은 8000원. 이전 한식뷔페보다 500원 비싸지만, 넓은 공간에, 메인 반찬이 약 4가지, 거기다가 추가할 수 있는 밑반찬이 다시 또 4가지이다. 이런 진수성찬을 점심마다 먹을 수 있다니, 8000원 정도는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정말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옷도 캐주얼하게 입고 있었고, 깔깔거리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힘겨운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맞이하는 점심시간은 그들에게 잠깐의 휴식이고, 이렇게나 활력을 선사하는 시간이 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선 기계적이고도 반복적인 끄덕임 속에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아마 상사와 함께하는 다소 불편한 식사 자리였겠지. 상사의 말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상대편에 앉은 상사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된다. 회사의 관리자 자리에 가게 되면 자신이 대화를 주도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책임감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사도 반대편에 앉은 직원이 불편할 수도 있다. 허나 그들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 관리자의 임무이기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쯤 되면 혼자 먹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눈에 벽을 보고 앉아 혼자만의 밥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보였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어놓고 밥을 먹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고수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밥맛을 느끼며 저작운동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럴 땐 말 걸지 않는 것이 센스 있는 사람의 조건이다. 온전히 쉬고 있는 그의 시간을 방해할 권리는 사장님에게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두리번거렸더니, 맞은편에 앉은 남편이 “밥이나 먹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심지어 옆 테이블의 대화도 유독 잘 들리는 나는, 밥 먹을 때 늘 속도가 느려지곤 한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멋쩍어 하며 “난 근데 이렇게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이 가끔 부럽기도 해.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난 약간 로망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 얘기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이라 말하며 웃었다. 에이, 뭘 백 번씩이나… 아니다, 이 사람과 만난 시간을 헤아리니, 백 번에 근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은 학원에서 근무한 적은 있지만, 그 안에서 각자 맡은 수업만 잘하면 되었기에, 근무 중 동료나 상사와 상호작용해야 할 일이 늘 적었고, 학교에서는 시간강사였어서 내 수업만 하고 나면 퇴근이었으며, 이후 강사 생활은 프리랜서라 출퇴근에 간섭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늘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일하고, 눈앞에 놓인 문제를 척척 ‘함께’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이런 로망 이야기를 백 번 가까이 했나 보다.
그날 반찬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만두가 나왔다. 이런 반찬은 누군가가 싹쓸이할 시, 다른 사람들은 못 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1인 2개’ 이런 식으로 제한을 둔다. 오늘 찐만두도 1인 2개씩만 허용된, 희소 가치가 있는 반찬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만두 한 판을 다 먹을 수도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아쉬운 개수였지만, 모두를 위해 꾹 참고 2개만 담았다. 그때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나뿐만 아니라 건너건너 옆 테이블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어머, ○○씨, 만두 한 명당 2개씩인데, 3개 담았어?”라고 누군가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어머, 몰랐어요!”라고 말했고, 다시 상대방은 “저기 써 있었는데, 몰랐어?”라고 또 한 번 면박을 주었다. 처음 말을 건 사람은, 정직하게 만두 2개만 가지고 온, 나와 같은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해 그 문제를 지적했겠지만, 만두를 3개 가지고 온 것이 그렇게 면박 당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두를 지적한 사람은 일을 처리할 때에도 상대의 문제를 쉽게 지적하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쉽게 단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밥상에서 보여 주는 모습이나 대화는 그 사람의 단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말할 수 있다.
만두 3개 가져온 걸 지적 당하는 상황이 나에게 일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만두 3개 중 하나를 입에 한 번에 넣어 버리고는 2개만 가지고 온 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만두 하나 정도 입에 쏙 넣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만두를 하나를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며 말하는 내 얼굴이 상상이 되어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