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비빔밥과 청포묵

by 오선희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는 것을 한식뷔페에 가서 알았다. 시기적절하게 알맞은 음식을 챙겨먹고, 제철 채소나 생선을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한식뷔페에 주기적으로 가는 것이 내 몸을 챙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한식뷔페에 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배식구에는 고사리, 무생채, 호박나물 등등과 달걀 프라이가 담긴 오목한 스테인리스 그릇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밥을 알맞게 푸고, 고추장 양념을 넣었다. 양념이 적으면 다시 가서 퍼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 양념을 적절하게 푸는 것이 관건이었다.


자리에 돌아와 밥을 싹싹 비볐다. 화룡점정으로, 달걀 프라이는 반숙이었다. 반숙의 노른자가 밥알 하나하나, 나물들 하나하나를 기름지게 만들었다. 나물들과 함께 엉켜 있는 밥알을 한 숟가락 떠서 뭉텅이로 입에 넣었다. 두 볼 가득찬 행복이 저절로 웃음을 불러왔다. 어렸을 적부터 밥 먹을 때 입 벌리면 등짝을 얻어 맞았기에 몸에 밴 습관으로, 입은 꼭 다물고 어금니는 바쁘게 움직였다. 입 안에 든, 나만 아는 맛에 괜히 신나하면서. 재료는 다 같아도 고추장 양념을 얼마나 넣었느냐 어떤 나물을 포함하여 먹었느냐에 따라 한 입 한 입 다른 맛이 날 테니, 나만 아는 맛이라는 게 틀린 말도 아니다.

고추장을 과하게 넣었는지 살짝 매웠다. 오늘 간 한식뷔페는 물을 뜨려면 퇴식구까지 가야 하고, 제공되는 컵도 후들후들 얇은 종이컵이어서 자리로 가져오기 쉽지 않다. 이렇게 당황스러울 땐, 재빨리 식판의 반찬 칸을 훑는다. 삼삼한 맛을 지닌 반찬이 하나쯤은 있을 테니 말이다. 아! 저거다. 청포묵. 김가루와 함께 조물조물 묻힌 청포묵이 뽀얀 얼굴로 해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울 때 얼음 먹듯이, 청포묵을 입에 넣었다. 매운 기운은 사라지고, 고소함이 남았다. 청포묵은 능숙한 젓가락 사용자에게도 참 어려운 음식이다. 너무 약하지도, 너무 세지도 않은 힘으로 청포묵을 집어야 묵이 잘리지 않는다. 또 최단거리를 계산해 입까지 묵을 가져와야 떨구지 않을 수 있다. 얼굴을 식판 가까이, 묵이 있는 쪽으로 가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 좋은 방법은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먹는 반찬 그릇에 내가 사용하던 숟가락을 가져다 대는 것은 안될 말이지만, 한식뷔페는 각자의 식판에 밥과 반찬, 국을 뜨는 곳이니 숟가락 사용이 가능하다. 내 몫의 청포묵에는 얼마든지 내 숟가락을 가져다대도 상관없다. 결국 난 그렇게 안심하며 숟가락으로 청포묵을 퍼먹고 입안을 달랬다.


만족스러워하며 퇴식구로 향했다. 퇴식구에는 손님들의 의견을 묻는 종이 게시판과 볼펜이 놓여 있었다. 이미 몇몇 의견들이 쓰여 있었다. ‘드시고 싶은 메뉴가 있으시면 적어 주세요. 준비해 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어떤 이가 ‘쓰면 줘요?’라고 써 놓은 것을 발견했다.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상대방의 선의를 무안하게 만든 저 한마디는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 맛있는 밥을 먹고 저런 말을 배설하다니. 저 말을 쓴 사람이 누굴까 상상해 본다. ‘쓴다고 주지도 않을 거면서, 이런 말을 왜 써, 쓰면 줘요?라고 써봐야겠다’ 그러고는 같이 온 사람한테 ‘야, 이것 봐. 웃기지?ㅋㅋㅋ’ 했겠지. 높은 확률로 모두 장난에서 이루어진 일일 것이다. 욕설을 쓴 것도 아닌데, 뭐 이 정도 가지고 뭐라 그러면 그 사람이 진지충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 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썼을 수도 있다. 익명에 숨어 아무런 가책 없이 던지는 농담 같은 말들이 열심히 하려 했던 상대의 그 ‘열심’을 얼마나 빨리 사그라들게 만드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쓰면 줘요?’ 밑에 한 줄 적었다. ‘말 예쁘게 합시다’. 내 문장이 동의와 공감을 얻기를 바라기보다 ‘쓰면 줘요?’ 문장이 이상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 어우러져서 살아간다. 여러 개성을 뽐내는 나물들이 밥과 잘 어우러지는 비빔밥처럼.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다. 매운 것 사라지게 만들어준 청포묵처럼. 그렇다면 응당 상대의 노력에 존중을 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면 주냐고? 내가 마음을 곱게 쓰면 상대도 반드시 줄 거다, 좋은 마음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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