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의 감칠맛

by 오선희

쓰레기를 먹는다고? 엄마가 처음으로 시래깃국을 끓여줬을 때, 내가 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착각하기 십상인 단어들이다. 시래기, 쓰레기. 시래기는 흔히 우거지와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우거지’는 배추의 겉잎을 말린 것, ‘시래기’는 무청을 말린 것으로 본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춧잎을 말린 것이라고 나온다. 그러니 구별은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시래기와 우거지를 요리해서 먹는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에, 시래기나 우거지나, 우거지나 시래기나 그거나 그거나다. 이번 기회에 둘을 합해서 ‘우래기’ 혹은 ‘시거지’라 부르고 싶다.


대부분 배추의 겉잎과 무청은 버려지기 쉬운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가으내 바짝 말려 놓았다가 겨울이 되면 물에 불려 먹었던 것이다. 국에도 넣고, 찌개에도 넣고, 무침에도 넣고. 비타민 섭취가 부족해지는 겨울에 시래기가 없었다면 사람들은 채소 섭취에 어려움을 겪었을 테지. ‘시래기’는 ‘시들다’라는 말에서부터 나온 단어이다. 어원은 ‘시들다’이지만, 음식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버려진 것을 다시 모아 음식으로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한 그 옛날 사람들의 삶을 깊이 존경한다. 그들의 생의 의지가, 먹고사는 의지가, 시래기라는 식재료를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했을 거라 생각한다.

국이나 찌개에 들어간 시래기는 양념 물을 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에, 시래기 조금을 건져 먹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뜨끈한 국물이 가득 담긴다. 약간 매운 국물이어도 시래기가 들어가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봄 직하다. 어차피 시래기만 건져 먹을 거라, 뜨겁고 매운 국물의 공격을 조금은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식뷔페의 반찬에 ‘시래기된장무침’이 보였다. 시래기는 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는 게 보통이었는데, 무침으로 나온 시래기가 갓 데뷔한 아이돌 가수의 무대를 보는 것마냥 신선했다. 반찬 칸 한가득 시래기된장무침을 담았다. 시래기는 원체 축 늘어져 있기를 좋아해서 반찬 칸에 담긴 시래기 무침은 여러 갈래가 뭉쳐져 한 덩이인 듯 보였다. 주먹밥처럼 뭉쳐 먹어도 아주 좋은 비건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은 또 어떠한가. 차게 먹어도 따뜻하게 먹어도 다 좋을 것 같은 짭조름하고 구수한 맛이었다.

된장찌개를 다 먹고 국물이 얼마 안 남으면 다시 물을 자작하게 넣고 끓인다. 그러면 한 끼 정도는 더 먹을 수 있는데, 두 끼부터는 좀 다르게 먹고 싶어서 국물만 버리고 남은 건더기를 새로운 반찬처럼 먹었던 적이 있었다. 된장찌개에 남은 두부, 호박, 감자, 버섯 등을 볶음이나 무침류의 반찬처럼 밥상에 올려놓는 것이다. 오늘 먹은 시래기된장무침이 딱 그랬다. 원래는 시래기가 들어간 된장찌개였는데, 국물이 사라진 건더기의 형태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반찬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건 아니다. 남은 건더기 같은 시래기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고, 참기름을 살살 둘러 무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는 마법가루가 맞았고, 참기름은 참된 기름이 맞았다. 입천장에, 혓바닥에, 착 감기는 시래기는 그야말로 감칠맛이 났다. 감칠맛의 주인공 시래기된장무침은, 메인반찬이 아니었으나, 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반찬이었다.


전세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요즘 나와 남편은 수도권을 벗어나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얼마 전에도 다른 지역으로 가 집을 보고 왔다. 수도권에 비해 가격이 착했지만, 이렇게 멀리 내려오는 게 과연 맞는가, 생각하며 마음이 좀 불편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시래기순댓국’이었다. 우리가 본 집 근처엔 상설 시장이 있었고, 그 안에는 국밥 골목이 있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 시래기순댓국을 시켰다. 입안 가득 구수한 국물이 가득 차고, 질긴 것 같으면서도 질기지 않은 식감의 시래기를 꼭꼭 씹으며 생각했다. ‘시래기순댓국 먹으려면 여기로 이사와야 하는 건가?’ 하고. 밥을 먹는 몇 분 만에 가게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맛집이었다. 우연히 맛집을 찾아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했다. 맛집을 우연히 찾은 것처럼, 아주 좋은 집이 우연히 우리에게 발견되기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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