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계란말이 정도

by 오선희

오늘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집들이를 하는 날, 바리바리 손에 뭐 하나씩 들고 시끌벅적하게 우리 집에 친구들이 방문했다. 지글지글 요리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그냥 시켜먹지 뭘 해”라며 말했지만, 난 “어떻게 그래, 우리 집에 처음 오는 건데”라고 수줍게 웃으며 식탁 가운데에 음식을 내놓는다. 근데 짠- 하고 내놓은 것이 다름 아닌 계란말이라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계란말이라는 녀석은 메인 요리가 되기에 조금 부족하다. 심지어 손님들의 기대를 잔뜩 올려놓고 내놓을 음식도 아니다.


근데 이 계란말이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정성을 들여야 만들 수 있는 요리이다. 계란말이를 두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계란이 최소 너댓 개는 필요하다. 계란을 그릇에 탁탁 깨뜨린 후, 계란 끈이 끊어질 수 있도록 손목의 스냅을 사용하여 포크로 휘저어 주어야 한다. 그뿐인가, 계란말이 안에는 잘게 다진 파, 당근도 구색 맞춰 잘 넣어 주어야 한다. 재료 준비만으로 정성을 다했다 말하긴 아직 이르다. 계란말이는 모양을 만드는 것에 또 어마어마한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네모난 프라이팬에 계란 물을 부어 가며 두껍게 계란말이를 만든다. 살살살살 뒤집어 접어준 다음, 다시 또 계란물을 부어 미리 접어둔 계란말이와 잘 붙게 만들어야 한다. 이때 가스레인지는 약불로 조정하고, 기름도 충분히 둘러 주어야 한다. 여러 겹의 계란말이 본체를 완성한 후, 약간 식혀준다. 그리고 모서리가 약간 둥근 직사각형 모양의 예쁜 계란말이가 될 수 있게 잘 썰어 주어야 완성이다. 그 위에 케첩으로 하트 또는 스마일 정도를 그려내는 것도 좋다.


그냥 계란 프라이 하나 부쳐 내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과정이다. 한식뷔페에서 계란말이가 나오면, ‘어유, 이 손 많이 가는 반찬을 어찌 하셨대!’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제야 음식을 하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알게 된 듯하다. 음식 자체가 아닌 음식 너머의 사람을, 그 손길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이제는 내가 음식을 마냥 받아먹기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린 시절 엄마가 해 주시던 계란말이가 생각난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급식을 먹지만, 나는 동그란 보온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다녔다. 보온도시락의 반찬통을 열면 엄마가 만들어주신 노오란 계란말이가 따끈하게 점심시간을 알렸다. 단 하나도 허투루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계란말이 한 입 베어 물고 밥 한 숟가락, 반찬과 밥의 조화를 생각하며 야무지게 먹었었다. 담백하고도 고소한 계란말이만 있으면 밥 한 공기가 뚝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 엄마가 조금 달라진 계란말이를 반찬으로 싸 주셨다. 계란말이 가운데에 김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땐 몰랐지만, 이제서야 드는 생각은, 엄마에게도 도시락 반찬은 매일매일의 고민거리였겠다는 것이다. 계란말이를 어제도 줬는데, 오늘도 계란말이를 또 주면, 딸내미가 싫어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계란말이에 새로운 뭔가를 넣을 생각을 한 거였다. 계란 물을 한 장 깔고, 그 위에 김을 한 장 올리고 그 김이 찢어지거나 말리지 않게, 계란 물 전체에 고루 놓이게 둔 다음 살살 계란을 말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괜히 웃기고 기분이 좋아졌다. 김을 넣은 계란말이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계란말이에 짭짤함이 더해졌다. 보기에도 예뻤다. 계란말이를 수놓은 까만 회오리 무늬. 노란 바탕에 검정색으로 엄마의 마음이 적힌 듯 보이는 편지 같은 계란말이였다.


어느 식탁에나 올라가 사람들의 환호성을 자아낼 만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몇몇은 그 정성을 알아봐 주고,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계란말이. 딱 그 정도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가 해야 할 1인분의 몫을 해내며, 어딜 가든 효용을 입증받으면서 말이다. 늘 고민 많은 나를 소심하다 하지 않고, 신중하다 여겨 주는 몇몇 동료들과 마음을 합해 소소한 성과를 내며 사는 삶. 계란말이만큼의 환호를 받는 삶을 꿈꾼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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