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뷔페의 고기들 너머에 초록의 수풀이 보인다. 바로 브로콜리. 푸르른 브로콜리가 적당히 데쳐진 상태로 초장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브로콜리는 ‘야호’를 부를 만한 메뉴는, 사실 아니다. 브로콜리를 보자마자 ’오늘 밥 두 그릇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브로콜리를 엄청 좋아해서 데쳐도 먹고, 볶아도 먹겠지만,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다. 오죽하면 가짜 배고픔을 판별해내는 질문이 ‘난 지금 진정 배고픈가? 브로콜리라도 먹고 싶은 정도인가?’가 되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나는 항상 브로콜리를 건너뛰지 않는다. 브로콜리 적당량을 내 그릇에 담는 이유는, 건강해지고 싶어서이다. 이 마음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과는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다. 오늘도 건강하게 살기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했다는 만족감이 푸르게 다가온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양치질이 귀찮은 건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은 치과치료 비용을 걱정해서라도 꼭 양치질을 한다. 고기만 먹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 브로콜리도 먹어주는 나는, 건강 회복 비용을 걱정하는 어른이 분명하다. 어른들은 브로콜리를 먹는다.
젓가락으로 브로콜리의 몸통을 집고 머리에 초장을 듬뿍 찍어 한 입에 쏙 넣었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초장이 목구멍에 확 불을 지르고, 브로콜리의 수분감이 그 불을 꺼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보니 브로콜리는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 같기도 했다. 단맛, 짠맛 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는 브로콜리는 그저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맛이 난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매운 음식으로 불난 속을 잠잠하게 만들어주니, 매운 떡볶이와 콜라보해도 좋을 듯하다. 또 섬유질이 잔뜩 들어가 배변활동에 도움을 준다고 하니, 브로콜리를 먹은 효험을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기대해 보기로 한다.
어느 날, 엄마가 유명한 데서 사왔다며 초장 한 병을 건넸다. 삼척 40년 초장 맛집이라나. 메인 요리가 아니라, 소스를 먼저 만나게 된 상황. 초장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떠올린 게 바로 브로콜리였다. 밥집에 가서야 건강을 위해, 어른미를 뽐내기 위해 먹었던 브로콜리를, 이제 내가 직접 집에서 해 먹게 될 줄이야. ‘어른의 어른’이 된 기분이다.
브로콜리는 굵은 줄기 위에 자잘한 잎사귀들이 매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먹는 부분은 ‘꽃’이라고 한다. 브로콜리는 꽃나무였던 것이다. 하긴 마트에서 브로콜리 하나를 사서 손에 들고 나오는데, 꽃다발을 하나 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근데 이 꽃들 사이가 너무 촘촘해서 잘 씻어 먹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블로그를 보니, 밀가루에도 담가 놓고, 소금물, 식초물에도 담가 놓아야 빽빽한 꽃들 사이의 불순물들이 빠진다고 했다. 나는 그냥 식초물에만 잠시 담가 놓았다가 팔팔 끓는 물에 삶는 것을 선택했다.
브로콜리 요리, 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큰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듯 작은 덩어리로 나눈 다음에, 물에 넣고 푹 끓이면 되는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생 나무 먹는 기분만 안 나면 되니까, 뭐 적당히 삶으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는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걸까, 어떻게 삶아야 적당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 동안 어느새 브로콜리는 오버쿡킹 되어버렸다. 역시 내 요리실력은 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요리도 아니고, 브로콜리 너마저 나에게 실패를 안기다니. 물에서 건져낸 브로콜리는 아기들의 이유식처럼 흐물흐물. 초장에 푹 찍었더니 꽃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삭한 식감이 사라져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문득 ‘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뭐’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아이의 목에 커다란 덩어리가 걸릴까 봐 잘게 잘라서 아기 밥그릇에 내놓는 엄마의 손길로 내가 날 돌봤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라면도 꼬들면보다 불은 면을 좋아하고, 아삭한 사과보다는 푸석푸석한 사과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식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나왔는데,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냥 맞으려는데, 바닥에 신기한 무늬를 발견했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한 시점에만 볼 수 있는 무늬이다. 나무의 잎사귀들이 빗방울을 튕겨내서, 나무의 그림자만큼은 비에 젖지 않아 만들어진 몽글몽글한 무늬. 바닥에 나무의 밑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모습이 신기했다. 나무가 우산이 되는 멋진 순간이었다. 그 무늬를 보는데, 아까 먹은 브로콜리가 떠올랐다. 내 배에도 우산이 들어 있는 것인가, 허허. 나는 요즘 모든 걸 먹는 것과 연결 짓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