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자취생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을 하면 뭔가 크게 변화를 맞이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은 생겼지만, 밥상은 늘 그대로 자취생 식단. 계란프라이를 못난 모양으로 부치고, 소시지를 구워 케찹에 찍어 먹는 게 전부인 밥상이었다. 그래도 비엔나 소시지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어 프라이팬에 살살 굴려 굽는 정성은 있었다. 그 갸륵한 정성으로 행복하고 맛난 밥상이 마련되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음식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그마저도 비싼 재료를 가지고 만들 순 없었다. 비싼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서인 이유도 있지만, 비싼 재료를 가지고 기껏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없었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 비싼 재료를 낭비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경험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결정한 것은 저렴한 재료를 사서, 재료 본연의 맛을 잃지 않게 음식을 만들어 보는 거였다.
마트에 가 동그랗고 예쁜 양배추 한 통을 샀다. 지저분해진 겉잎을 떼어 내고, 가운데 강력한 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잘 잘라 소분해 두었다. 그리고 밥을 먹을 때마다 한 덩어리씩 가져다가 찜기에 쪄서 내놓았다. 수증기에 후들후들해진 양배추 하나를 손바닥에 펼치고,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양배추의 한가운데에 놓았다. 그리고 역시 마트에서 사 온 쌈장을 넣었다. 그리고 양배추를 보자기 싸듯이, 만두 만들듯이 싸서 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안에 든 것은 별것 없었지만, 갓 지은 밥의 식감과 양배추의 식감이 달라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그 안에 든 쌈장은 밥의 단맛과 어우러져 이른바 단짠단짠의 재미를 주었다.
‘자, 이제 이 안에 다른 재료를 넣어 보자.' 하고 생각했던 게 우리의 다음 스텝이었다. 쌈장만큼이나 짭쪼롬한 무언가였으면 했다. 그래서 우리는 명절 선물로 받은 통조림 햄을 주워 들었다. 햄을 얇게 썬 다음, 프라이팬에 약한 불로 구웠다. 기름을 두를 필요도 없었다. 햄에는 이미 흥건하게 기름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름진 햄을 양배추 쌈으로 먹으니, 딴엔 고기가 들어갔다고 더욱 풍성해진 한 입이 완성된 기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양배추 쌈에 넣어 먹을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재료를 적극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쌈장 안에 두부 1/3 정도를 으깨어 넣고, 통조림 참치도 하나 까서 넣고 잘 섞었다. 그렇게 묵직해진 쌈장을 양배추 쌈 안에 넣고 또 한바탕 우걱우걱 먹고 나면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머, 깜짝이야.” 상상 이상으로 너무 맛있었던 것이다.
결혼 생활에서 맛있는 밥을 함께 먹는 건 삶을 나누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대단한 것은 아니어도 함께 밥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식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나 요즘 유행하는 밈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럭저럭 살아낸 서로의 하루를 위로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 바로 밥 먹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 중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일에서 큰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각자 힘이 빠져 있었던 시기였고, 자연스럽게 밥 먹는 자리에서 크게 즐겁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위기를 서로 나누면 참 좋았을 텐데, 서로에게 짐을 지우기 싫어서였는지, 우리는 상대가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몰래 울어야 할 땐, 그 눈물이 더 짜진다는 것을 난 또 그때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엉엉 소리를 내지 못하고, 몰래 눈물을 흘릴 땐, 눈물의 성분이 더 농축되는 것 같았다. 입에 닿는 짭짤한 눈물의 맛을 보며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짭짤한 눈물 맛을 보며 보낸 시간만큼 큰 위기의 일도 차츰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가던 즈음, 우리는 또 밥상에 양배추 쌈을 내놓았다. 그동안 입이 너무 짰던 나머지, 양배추의 삼삼하고도 단맛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기를 극복한 우리는 어느새 양배추 쌈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어머, 깜짝이야."를 외치며. 양배추는 속으로 들어갈수록 그 크기가 작아지고 여려진다. 겉엔 다소 질기고 큰 잎이 그 여린 부분을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작고 여린 마음을 잘 숨기고 있는 게 그 마음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안을 꺼내어 보이고 서로 안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양배추 쌈처럼 서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마음의 허기도 채울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언제까지고 양배추의 가격이 오르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양배추 쌈에 넣어 먹을 재료를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