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배달

by 오선희

당면은 밀가루일까 아닐까를 생각하며 검색해 본 적이 있다. 다이어트약을 먹기로 했는데, 그 약을 먹기 전 일주일은 완벽하게 밀가루를 끊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면은 참을 수 있지만, 당면은 당면히(=당연히) 참을 수 없었기에, 당면이 밀가루가 아니라면 잡채를 계속 먹을 생각이었다. 검색 결과, 당면은 감자나 고구마의 전분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얏호. 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당면은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식 뷔페에 들어가면, 경주에서 볼 법한 고분과 같은 모양새로 자리잡고 있는 잡채를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양심상 잡채 한 뭉텅이 정도로만 식사를 끝내보려 하지만, 잡채러버인 나는 스리슬쩍 일어나 잡채 리필을 한다. 리필도 하는데, 지저분하게 먹을 수 없어 나는 항상 잡채 컨트롤의 매너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잡채는 당면의 탄성으로 인해, 욕심 부려 한 번에 많이 집으면, 아래 그릇에 있는 당면들이 딸려 올라오다가 용수철이 끊어지듯 팅 하고 여기저기 달라 붙을 때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당면 용수철이 끊어질 때, 그 위에 있던 참깨며 시금치 같은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튈 수 있으니, 늘 조심해야 한다.


집게를 잡고 집게가 감당할 만큼만 적당량을 집어 살짝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 잡채가 아래 그릇의 잡채들과 실타래 엉키듯 엉켜 있으면 집게를 풀고 다시 조준을 해서 적당한 양이 끌어 올려지길 기대해야 한다. 잡채 고분을 집게로 살살살살 흐트려뜨린 다음 다시 살짝 들어올린다. 이렇게 조심조심 푸면서도 재료의 조화를 신경 쓴다. 시금치나 부추의 초록, 당근의 주황색, 목이버섯의 검정까지, 당면의 노오란 빛깔과 조화를 이루도록 골고루 담는 것이 중요하다.


잡채 사랑은 부산의 비빔당면으로까지 이어졌다. 부산 여행에서 먹어 본 비빔당면은 진짜 새로운 맛이었다. 시장의 북적거림 속에서 먹은 비빔당면은 뭔가 시끄러운 맛이었다. 잡채 같기도 한데, 매운 맛이 와아아아아~ 달콤한 맛이 와아아아아~ 내 입에다 소리치고 있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먹는 잡채에 매콤달콤한 양념 한 숟가락 넣었을 뿐인데, 파스타나 우동, 쌀국수, 비빔국수, 냉면 등등처럼 비빔당면은 독립적인 한 그릇 음식으로 거듭났다. 그동안 잡채는 반찬으로만 먹었었는데, 비빔당면은 당당하게 밥상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당당한 면모를 보여서 당면인가 싶다.


우리동네 한식뷔페 사장님도 잡채를 정말 맛깔나게 잘 만드신다. 별 기대 없이 밥을 먹으러 갔다가 잡채가 ‘왔어?’하고 인사하면, 나는 내적 환호성을 질렀었다. 그런데 한번은 시간이 안 맞아 남편만 한식뷔페에 갔는데, 그날 반찬이 잡채였던 것이다. 남편만 들어가자 사장님은 왜 혼자 왔냐고 물으셨고, 아내는 일이 있어서 못 왔다고 잡채 귀신인데 아쉬워 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뭘 엄청 좋아하는 사람에겐 왜 ‘귀신’이라고 하는 걸까? 갑자기 궁금하다. 너무 좋아하면 혼이 빠져나가버릴 정도가 되니까, 혼으로 빠져나간 ‘귀신’을 좋아하는 것에 이어 붙여 단어를 만들었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아무튼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는데, 사장님은 비닐봉투 가득 잡채를 싸 주셨다고 한다. 잡채를 테이크아웃했다는 남편의 말에 진짜 또 귀신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히히히~ 한식뷔페에서 잡채배달이 되다니. 너무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가끔씩 비닐봉투에, 남은 음식을 싸서 단골들에게 나눠주셨다. 일주일에 3~4일이나 가니, 가만 앉아 사장님을 관찰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사장님은 손님을 잘 관찰하고 있다가 손님이 어떤 반찬을 잘 먹으면 그걸 기억했다가 비닐봉투에 담아 밥 다 먹고 나갈 때 살며시 쥐어주셨다. 나만 예뻐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살짝 서운할 뻔했지만, 생각해 보니 오히려 좋다.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정신의 사장님, 사장님이 단골을 사로잡는 비법을 보며 우리 모두가 파티원이 된 듯한 좋은 기분이 들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시 잡채는 잔치 음식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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