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꿀이 들어간 호떡 8개짜리가 할인을 하길래 사왔다. 냉동실에 얼려놓고, 하나씩 꺼내서 녹여 먹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일하러 나가기 전에 꿀호떡 4개 정도를 구워 든든히 먹고 갈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자연 해동을 시키거나,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가스레인지 약불로 구워 먹어야 하지만, 그날은 전자레인지를 ‘냉동간식’ 메뉴로 맞춰 놓고 꿀호떡을 돌려 놓으면 맛있게 데워져 있겠지 생각했다.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프라이팬 앞에 눈을 고정할 수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머리를 말리면서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쯤이면 ‘띠띠띠’ 하고 전자레인지가 다 돌아갔음을 알리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잠잠했던 것이다. 드라이어를 내려 놓고, 부엌으로 갔다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전자레인지에서는 연기가 마구 솟아오르고 있었고, 뿌연 연기는 이미 거실 천장까지 자욱하게 덮어버린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전자레인지의 전력을 차단하고,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큰일나는 상황이니, 우선 연기부터 밖으로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은 불행하게도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날이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묶어놨던 철겨운 선풍기까지 꺼내오기에 이르렀다. 강풍에 회전까지 시켜서 한참을 돌렸다. 그래도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그나마 호떡을 태운 달달한 냄새가 나서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오래 문을 열어놓아 바닥은 냉골이 되었기에, 까치발로 살금살금 다니면서 향초도 피워 보고, 섬유탈취제도 뿌렸지만, 여전히 냄새는 가득한 상황. 수습이 불가한 상황에서 같이 사는 양반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퇴근해서 들어온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다 태워서 까매진 접시를 닦는 일, 그리고 문제의 전자레인지를 닦은 후, 베란다로 내 보내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느낀 바가 있었다. 문제상황이 생기면, 그 문제를 일으킨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냄새의 근원지인 전자레인지를, 새까매진 접시를 그대로 두면, 아무리 환기를 시키고 탈취제를 뿌려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 거였다. 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면, 일을 시작도 못하게 하는 무기력이 있다면, 그걸 그렇게 만든 것부터 찾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 힘들게 하는 건 과거의 기억일 때가 많다. 근데 문제는 그 기억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어 도려내기 쉽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나에겐 계속 불편한 감정이 남는 것일지도. 어딘가에 머리를 쾅 박는 순간 그 기억이 사라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며 편지 등등을 다 태워버리는 걸 수도 있겠다. 연결 고리를 차단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나는 조금 다르게도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미세한 냄새로나마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그것의 언저리에 도려내지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 ‘언저리’는 ‘둘레의 가 부분’이라는 뜻이다. ‘저리’ 가라고 내쳐진 듯 보이는 장소에서라도, 흔적은 얼마든지 남길 수 있다. 중앙에 있는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중심에 놓이고 싶지만, 사실 언저리에서 향기만, 아니 냄새만이라도 풍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그가 어느 순간 킁킁 나를 느끼고 돌아보았을 때 그 자리에 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또 내가 좋아하는 일의 중심에 놓이고 싶기도 하지만, 사실 언저리에 있는 게 더 맘이 편하기도 하다. 늘 하던 대로 그 언저리에 있으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내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지.
환기를 한참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문만 열면 꿀호떡의 냄새가 내 코에 확 끼친다. 꿀호떡이 내 언저리에 머물고 있나 보다.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꽤 걸리겠지만, 다 사라지면 또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다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사서 구워 먹어야겠다. 다시 태우는 일은 없을 거다.